공자가 말씀하셨다.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
사람의 신체와 머리카락과 살은 부모님께 받은 것이니
감히 헐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효경>
하숙생의 효심은 알겠으나 영 볼썽사납다. 이마에서 눈썹을 타고 내려와 두 눈동자 앞에 쳐진 흑갈색 커튼이 아주 많이 거슬린다. 하숙생 부모님이 보셨어도 벌써 잔소리 꽤나 하셨을 것이다. 자기도 커튼 사이로 보기에는 완벽하지 않은지 나를 보고 얘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아래로 내려다본다. 옆머리는 귀를 덮었고, 뒷머리도 셔츠 깃을 덮은 지 한참이다. 한 겨울 추위에 덕은 좀 봤겠다. 앞머리가 너무 거추장스러운지 집에 있을 때는 거의 헤어밴드로 이마를 드러내 놓고 있다. 남자 배우들은 긴 머리도 참 잘 어울리던데 배우가 아니라 그런가 영 별로다. 단발커트도 샤기컷도 아닌 어중간한 머리는 정체성을 잃은 지 옛날이다. 2대 8이든 3대 7이든 6대 4든 옆으로 길을 터 살짝 쓸어 넘기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겠는데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앞으로 딱 붙여서 빗어 내린 머리는 멋져서가 아닌 그 반대여서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길이라도 짧든가. 얼굴의 반을 가렸다. 머리카락이 내 소유가 아니니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도 눈이 있는데 뒤덮인 머리카락으로 추레해 보이는 모습을 하숙집 주인으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학생, 머리 좀 자르지? 너무 길어서 눈이 안 보여."
"싫어요. 계속 기를 거예요."
"길러서 뭐 하게?"
"그냥 기르고 싶어요."
그럴듯한 이유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없다. 그렇다면 자르는 게 답이라 생각하며 입밖으로는 내뱉고 싶지 않은 말을 곁들이며 회유를 해 본다.
"잘생긴 얼굴이 긴 머리 때문에 안 보이잖아. 학생은 이마가 보여야 예뻐."
"그건 최악이에요. 저도 길러보고 싶어요. 다들 머리 기르던데 왜 자꾸 제 머리만 가지고 그러세요."
"긴 머리도 다듬으면서 길러야지 안 그러면 못 봐줘."
"괜찮아요. 제 머리예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네 머리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한 집에 살면서 나도 좋은 걸 볼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인 지 오래다. 새 학년 시작 전에는 결말을 내야 하는데 어떤 얘기를 해도 안 먹힌다. 머리 감고 나면 말리는 데 오래 걸린다, 머리가 더 많이 뻗친다, 머리 냄새도 더 많이 나고 땀나면 꼴 우스워진다, 새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만나는데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등등.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것도 아니고 지저분한 것들만 좀 다듬자 해도 안간힘을 쓰며 죽기 살기로 미용실 가는 걸 거부한다. 흡사 구한말 단발령에 저항하는 선비다.
3월이 다가오니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달래도 보고 이런저런 말로 회유도 했으나 바뀔 기미가 안 보였다. 학교에 낼 반명함판 사진을 덥수룩한 머리를 한 채 찍을 수는 없었기에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학생, 그 머리로 사진 찍을 수 없잖아?"
"괜찮아요." 한결같은 대답이다. 밀리면 안 된다.
"학생보다 내가 오래 산 사람으로서 아무리 전문 사진기사라 해도 그 머리로 제대로 된 얼굴 사진은 불가능해. 한번 찍은 사진 3년 동안 학생증에 붙어 있을 텐데 나중에 보면 학생도 내가 왜 이랬나 하면서 후회할 거야."
"괜찮아요, 후회 안 해요."
좋은 하숙집 아줌마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건만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결국 미용실 가서 정리만 하고 오자는데 왜 말을 안 듣냐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뜨거운 용암이 주체할 수 없이 입에서 터져 나와 내 몸을 휘감았고 하숙생에게로 흘러갔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하숙생 또한 내 머리 내가 기르고 싶다는데 왜 자꾸 자르라고 하냐며 따져 물었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것을 어쩌지 못해 울먹거렸다.
잠시 쉬어가야 했다. 모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러다 다 죽겠다 싶었다. 미용실 가는 일에 둘이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고 에너지를 쏟을 일인가 싶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미 흘러나온 용암이었지만 정신 차리고 더 이상 터져 나오지 않게 해야 했다. 선물로 들인 하숙생인데 대접은 못해 줄 망정 있을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기르고 싶다는데 나만 그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주고 받아주면 될 텐데 내 못난 성격이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생각에 자책을 했다. 선물을 손에 쥘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 한없이 속상했다.
"학생이 그렇게 기르고 싶다면 알아서 해. 단, 이번 한 번만 미용실에 가서 머리 좀 다듬고 오고 이후로는 학생 마음대로 해. 머리를 기르든지 묶든지."
속상한 마음은 미안함이 한가득인데 정작 하숙생에게는 협박인지 타협인지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학생은 이제 마음대로 하란 말에 좀 전의 격앙된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선뜻 미용실에 가겠다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자랄수록 하숙생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도 하고 시야를 가려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 또 들쭉날쭉한 제멋대로인 머리 길이와 가발을 쓴 것 같은 부스스하고 붕 뜬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부쩍 거울 앞에 서 있는 횟수가 잦았다.
"아무래도 미용실에 가야겠어요."
통사정과 회유와 협박과 타협에도 끄덕하지 않던 하숙생은 겨울 내내 기른 머리카락을 자신의 의지로 개학 전에 잘랐다. 동시에 열심히 착용하던 헤어밴드도 이별을 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자르지 않겠다고 애지중지하던 소중한 머리카락을 보내주고 온 날, 거울을 보며 환골탈태한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한 것이었다. 자신이 원한 대로 많이 자르지 않아서 그런 건지, 시야가 탁 트여서 그런 건지, 전보다 몇 배는 더 괜찮아 보이는 자신에게 반해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과 인내심을 더 길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계속 자라고 있는 앞으로의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하자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4월이 된 지금 내 눈에는 또 보인다. 하숙생의 머리카락이 눈과 목덜미를 덮고 있는 모습이. 마음대로 하라는 하숙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자꾸만 보인다. 다시 한번 커튼콜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