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어디로든 데리고 가네
반줄 공항에 도착하니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 제작년 동부 아프리카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도 그랬던 기억이 났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해하고 박수를 칠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참 좋다.
비행기가 멈추자 사람들이 분주히 자신의 짐을 챙긴다. 사람들의 간격이 좁아서 계속 몸이 부딪힌다. 이 거리감. 낯설다. 두렵다. 정겹다. 설렌다.
오는 길 내내 기내 분위기가 마을버스 같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아, 나 정말 서아프리카에 왔구나!' 이제야 이곳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반줄로 가는 길
반줄로 오기까지 7일이나 걸렸다. 편도 50만원대의 저가 항공을 이용한 탓에 비행 여정만 약 3일이 걸렸다. 임시로 머물던 서울 집을 정리한 후, 원래 살고 있는 지리산집을 정리하고, 본가인 부산에 들러 과거의 짐을 정리했다. 해서 집 떠난 지 7일째에 드디어 반줄로 도착한 것이다.
인천에서 광저우, 광저우에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반줄로 경유해서 왔는데, 중간에 열악한 공항에서 노숙까지 하느라 체력을 다 소진해 버렸다. 반줄에 가까워져 갈수록, 이렇게까지 힘들게 가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나는 누구...'...
'내가 정말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 노오오오력을 기울여서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여러 두려움과 정체성의 혼란이 올만큼,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삶이 준 메시지
체력이 더 이상 남지 않아 정신이 혼미해져 갈 때쯤 삶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줬다.
가서 너 자신을 그대로 내놓아라. 나머지는 삶이 알아서 할 것이다.
너는 네 운명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이 네 등에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
그전에 기억해내야 해.
기억한다는 것은 곧 너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의미야.
일단 운명에 순응하면, 삶이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 너를 도와줄 거야.
땅의 신은 언제나 너와 함께했어.
너는 물론 모험을 하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게 아니야.
네 소명을 따르는 것뿐이지.
네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너 스스로 아직 백인들의 세계에서 겪은 경험들에 조건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너의 걱정은 인간적인 걱정이지 영적인 것은 아니야.
그러니 가서 자신을 내놓아라- 말리도마, 귀소 외삼촌의 조언 중에서
말리도마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리도마'는 부르키나파소 다가라 사람이 자신의 삶을 쓴 책이다. 말리도마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길을 걸어가도록 했던, 외삼촌의 조언이 내 가슴속에도 깊이 들어왔다. 말리도마에서 읽은 내용들은 내가 반줄로 가는 여정에서 꿈에 계속 나올 만큼 내 인생에도 중요한, 삶이 내게 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다.
첫째, 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둘째, 말리도마는 내가 보기엔, 꽤나 짧지 않은 분량의 책이다.
셋째, 포기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올해 내내 이 책을 놓지 않고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읽어 왔다.
넷째, 그러다가 갑자기 반줄로 떠나기 전부터 직전에 이 책이 술술 다 읽혔다.
내가 삶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 삶은 항상 내게 무언가를 준다.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삶이 지금 내게 이 메시지들을 읽히게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라 느꼈다. 삶은 내가 머리로 다 알 수 없고, 머리로 다 계획할 수 없다. 감비아를 시작해 서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 가기로 했던 이 모든 과정을 위해, 내가 치뤄내야 할 일종의 '입문식'이었다 생각한다.
서아프리카에 가는 이유
"서아프리카에 볼 것도 없는데 왜 가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면 정말 설명하기가 힘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삶이 나를 거기까지 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답을 하면, "그래서 거기에 뭐가 있는데?"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럼 그냥 질문을 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아 만데 예술과 삶을 배우러 가요."라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말리도마를 읽은 사람들은, 왜 서아프리카가 나를 부르는지 (내가 왜 서아프리카를 가고 싶은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말리도마는 책에서 거듭 '언어는 결국 경험과 실제를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말한다. 그래서 이 '예술' 또는 이 행위나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내 삶의 관계성을 설명할수록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말하는 것 너머의 관계를 말하고 싶은데 말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설명하는 것을 노력해 본다면, 고통이 흘러넘치는 삶이 나를 죽음 앞까지 내몰았을 때, 나는 서아프리카 음악과 춤에 매료됐다. 서아프리카 만데 전통을 기반으로 한 음악과 춤을 만나게 된 이후 내가 보게 된 것은 이 예술이 단순히 예술의 기술을 쌓고 소비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본 적 있다. 우주는 서로를 무한히 비추는 반짝이는 그물망이라고. 나는 서아프리카 만데 문화 예술을 배우며 이 사람들이 자연과, 우주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과 무생명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맺어가는 관계를 이 예술로 직조한다고 느꼈다.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그물망을, 그 관계들을 촘촘히 잇는 아름다운 행위이자 살아가는 과정 전체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음악스트리밍으로 듣는 음악 너머의 음악, 코레오 된 춤 너머의 춤, 그 안의 삶과 관계와 문화를 배우고 싶었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만한 생각일 수는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관계를 맺고 삶으로 배우고 싶었다.
음악과 춤의 매개를 통해 좀 더 그 삶 안으로 들어가서 관계를 맺고, 삶으로, 몸으로 이해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느껴서 일단 서아프리카까지 왔다.
나는 가능하다면 앞으로 1년간 서아프리카 만데 문화권 지역을 중심으로, 감비아> 카사망스>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로의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에서 10개월간 지내며 만났던 춤과 리듬, 음악을 따라 이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2023년에 동, 북, 남부 아프리카를 홀로 육로로 여행하며 그 지역에 대한 편견을 나 스스로도 깨고, 잘 마쳤던 것처럼 이번 서아프리카 여정도 육로로 이동할 예정이다. 가능하다면 내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자 만데 문화가 시작되고 이어지고 있는 말리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며 만데 예술을 배우고 내 몸에 넣어보려고 한다.
까누데! 까누데! 까누데! 다니녜예 쏘달라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어디로든 데리고 가네
카누데. 카누는 만딩카어로 사랑을 뜻한다. '카누데'는 한국에 있는 브루키나파소, 보보 사람들의 춤 공동체인 쿨레칸을 통해 알게된 노래다. 내가 삶을 끌고가는 것이 아닌, 삶이 나를 끌고가는 여정에 몸을 싣고서, 앞으로 꾸준히 글을 써나가겠다.
감비아 여행 tip
#감비아 공항 환전 정보
공항 환전은 시내 시세보다 비싸다. 나는 당장 현금이 필요해 반줄 공항에서 어쩔 수 없이 환전했다. 처음 제시한 금액은 비싸서 흥정을 하니, 바로 흥정을 받아들여주셔서 100달러를 6,800달러시로 환전했다. 전 세계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감비아도 가능하면 현지 시장에서 환전하는 게 환율이 좋다.
#감비아 공항 심카드 비용
공항 africell 기준 8기가 600달라시, 20기가 1,200 달라시
#입국심사 시 모든 외국인은 20us dollor의 Gambia security fee를 내고 영수증을 받아 여권 수속을 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