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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산잘리와의 첫 수업

서아프리카의 감비아, 켐부제에서 코라를 배우다

by 두치

산잘리와의 첫 수업이 시작됐다.


산잘리 조바르떼는 유럽에서 '여성'코라 선수로 유명한 소나 조바르떼에게 코라를 알려준 아버지이자, 감비아의 전설적인 코라폴라 아마두 반상조바르떼의 막내아들이다. 조바르떼(Jobarteh, 지역에 따라 Diabate)는 만딩카 사람들 중 두 번째 젤리 가문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음악을 세습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만딩카이자 젤리인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말리 남부 지역에 거주하다가, 제국을 거치며 그 역할이 확대되면서 점점 이주를 하게 되어 카부 제국의 영향권이라고 불리는 지역(현재의 감비아, 카사망스, 기니비사우 등)으로 이주했다. 나의 선생님인 산잘리는 현재의 감비아, 켐부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켐부제에는 코라를 연주하는 만딩카 젤리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위치한 산잘리의 집에 한 달간 머무르며 코라를 배우게 됐다.


켐부제에 도착한 다음날 산잘리는 내게 11시에 수업을 시작하자 제안했다. 하지만 11시가 되어도 산잘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수업 시간은 두 번 더 연장되어, 오후 3시 반에 본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 그의 제안이 반가웠다.


한국에서 1년 동안 코라 음악을 유튜브로만 듣고, 코라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혼자서 어찌어찌 코라를 연습했는데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드디어 인간(산잘리)이 치는 코라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직접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뿌연 모래 먼지가 쌓인, 커다란 소파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오래된 코라들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 거실에 나란히 앉았다. 오래된 중국산 튜너로 선생님 먼저, 그다음 내가 코라 21개의 현을 튜닝했다.


KakaoTalk_20250107_222831699_01.jpg 한국에서 봤던 코라보다 몇 배가 더 큰 코라들이 여기저기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오래된 가문의 역사와 그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튜닝을 마치자, 산잘리는 어떤 노래를 처음으로 가르쳐줄지를 잠시 고심했다. 나는 "한국에서 혼자 연습한 노래가 있다"며 '카이라'의 반주를 쳐서 보여드렸다. 그렇게 우리의 첫 수업은 카이라로 결정됐다.


'카이라'는 만딩카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만딩카 사람들은 인사를 할 때, "카이라바"라고 한다. 바는 크다는 뜻으로 카이라바는 큰 평화를 뜻한다. 오랜 인권활동으로 거듭 좌절감을 느껴왔던 내게 평화는 너무 큰 말이라서, 입에 담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코라 음악 '카이라'는 좋다. 처음 카이라 반주를 시작했을 때, 단순하지만 맬로디의 중심이 되는 F키의 연주가 좋아서, 카이라라는 노래에 매료되었고 더 연주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1년간 단순한 반주만 치는 것이 너무 지겨웠는데, 코라 대가께 이 음악을 배운다는 것이 설레고 기쁜 일이었다.




나는 백인들이 기계처럼 연주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연주하는 스킬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하프처럼, 코라는 서아프리카의 하프라고 하는데 코라는 하프가 아니다. 많은 백인들이 코라를 하프처럼 친다. 그렇게 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코라는 그게 아니다. 그러므로 근본을 잘 알아야 한다

나는 산잘리의 첫마디가 너무 기뻤다. 나도 백인들이 가지고 간 코라, 백인들이 각색하고 편집한 코라가 아니라, 본래의 코라-전통의 코라에 가까이 가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 산잘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반대쪽 창문에서 '탁탁' 소리가 났다. 자세히 보니 구부러진, 긴 부리의 케코(라이온킹에 나오는 자주, Tockus, 붉은 부리 코뿔새)가 창문에 앉아 창을 마구 두들겼다. 그 소리가 꽤나 커서 수업을 계속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KakaoTalk_20250107_222831699_02.jpg 창문을 열심히 두드리던 케코 녀석


산잘리는 말했다. "여기가 소나가 살았던 방이야. 케코들이 이른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소나가 쟤네를 참 싫어했어"


그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이곳엔 정말 다양한 새들이 많다. 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인 것 같다. 산잘리도 "새들이 나무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서, "새들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창문 너머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자꾸만 온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산잘리는 내게 기본 반주를 연주하라고 하셨다. 내가 반주를 시작하자, 그 반주를 바탕으로 산잘리가 솔로를 한동안 연주 했다. 유튜브가 아닌 인간에게 처음 직접 듣는 코라였다. 산잘리의 솔로 연주를 듣고 있자니 황홀경에 빠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카이라를 같이 연주했다. 산잘리는 아마두 반상 조바르떼가 그랬던 것처럼, 거칠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음계를 짚으며 솔로를 해나갔다. 그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음에 기뻤다.


산잘리가 카이라 솔로를 하는 옆모습을 봤다. 아까 거실에서 불같이 화를 내던 산잘리는 간데없고 그의 얼굴에 평화가 앉아 있었다. 내가 여느 코라 폴라들을 통해 봤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평화의 상태를 느꼈다.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카이라'는 1940년대에서 50년대 사이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의 독립운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말리의 기타 지역에서 젊은 젤리들이 채택한 저항의 노래다. 이 젊은 젤리들의 협회는 카이라 음악에 맞춰 춤을 췄는데, 프랑스 당국은 이 춤을 금지시켰다. 소문에 따르면, 프랑스 사령관들이 젊은 젤리들이 이 노래와 춤을 통해 그들의 '여자친구'들을 '도둑질했기' 때문에 금지시켰다고 한다. 독립 후 카이라는 젤리가 부른, 가장 인기 있는 히트곡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코라 첫 곡으로 카이라를 배울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내 삶에서의 평화도, 그들의 역사와 닮아있다 느꼈다. 내게 현실의 평화는, 평화를 향해 저항하고 나아가는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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