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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과 연습

땅과 코라에 기대는 연습

by 두치

주말에 울리는 모스크의 아잔(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7시쯤 되니 바깥에 뭔가가 지붕과 창문을 쾅쾅 두드린다. 소란에 나가보니 난생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새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일어나야겠구나'


대충 밥을 먹고 코라 앞에 앉았다. 코라를 치기 시작하니 문 앞에 아프리카 바위 비둘기(Speckled Pigeon)가 왔다. 코라 소리를 들으려는 듯, 붉은 점으로 덮인 얼굴을 갸웃 거린다.


옆집에 사는 치카도 "새들이 코라를 좋아하는 것 같다" 했다. 코라를 치기 시작하면 "새들이 창문으로 날아온다"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카메라를 들면 다 도망간다"고 웃으며 말했다.




연습, 연습, 연습


오늘이 나흘째, 매일 4~5시간 정도 연습을 했다. 반주 한 패턴 치는데 3초 정도 걸리니까 대충 계산하면, 3만 번 가까이 친 것 같다. 많이 연습한 것 같은데 아직도 아주 간단한 반주 하나 제대로 치는 것이 어렵다. 더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선 10만 번씩 이상은 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 같은 패턴을 연주하니 코라를 치지 않을 때도, 꿈에서도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사라지지 않는다.


무의식 깊은 곳으로, 몸의 가장 작은 세포까지 멜로디가 들어오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산잘리가 말하는 근육 기억(Muscle Memory*앞으로 '몸의 기억'으로 의역)이 이런 거겠지. 산잘리는 항상 몸의 기억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몸의 기억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느낀다. 내가 서아프리카 예술에 매료된 큰 이유 중 하나도 몸의 시간과 언어를 따라가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프리다이빙과 서아프리카 예술을 만나기 전까지는 머리로 사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머리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글을 쓰고, 활동해 왔다. 하지만 살아가는 고통이 더해갈수록, 삶은 내게 몸에 귀기울이라 말했다. 내 몸의 감각을 더 기민하게 알아차린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코라, 땅과 연결되는 감각


산잘리가 내게 처음으로 알려준 것은 뮤트(mute)를 하는 법이다. 뮤트는 카부 지역의 전통적인 주법 중 하나로 주로 식민지 시대까지 감비아나 카사망스, 기니비사우 등에서 왕성히 활동했던 젤리들의 연주에서 들을 수 있다. 코라 연주가 서구화(현대화) 되기 전의 형태에 가까운 연주다. 산잘리는 가장 단순한 구조의 뮤트 주법을 알려줬는데 나는 하나도 제대로 연주하기가 힘들었다.


산잘리가 빌려준 코라의 칼라바스(박, calabash) 크기가 내 몸통을 다 덮을 만큼 커서 코라를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뮤트를 하려고 하면 코라 현을 누르는 손가락의 힘과 더불어 코라를 받쳐주는 내 손목의 힘이 그 반대로 받쳐줘야 한다. 몇 만 번을 반복해서 연습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걸 젤리들은 어떻게 해온 거지? 혼자 하는 연습이 참 힘들게 느껴진다. 젤리들이 코라는 쉬운 악기가 아니라 했는데, 이렇게 간단한 3초짜리 반주 하나를 일주일 가까이 연습해도 나아지지 않으니 지난하다.



산잘리는 왜 그 많은 주법 중에서도 뮤트를 하는 법을 먼저 알려줬을까. 반복되는 연습에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가 불현듯 산잘리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아마두반상조바르떼 Amadou Bansang Jobarteh)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 또 그 아버지들이 내게 '코라에 몸을 기대는 법을 알려준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 이어진 코라의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코라에 이어진 땅에 기댄다. 코라나 땅에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만 뮤트를 하려고 하면 내 몸이 다친다. 몸만 다치는 게 아니라 연주도 제대로 안된다. 소리만 크게 나거나, 다른 현을 건드리게 되거나, 음정이 나가버린다. 그래서 나는 코라와 땅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코라를 붙잡고 있지 않을 때도 몸으로 지구에 기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코라는 나와 땅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안내자가 된다.


땅에 기대는 감각은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서아프리카 만데 춤을 추고 있는 시비리에게 배웠던 경험이 있다. 시비리는 춤을 출 때 땅이 나를 받쳐주고 있는 것을 느껴보라고 했다. 그가 부르키나파소에 갔던 경험을 통해,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땅에 기대고 있는지를 설명해 줬었다. 그 후로 나는 서울에서 신호등을 건널 때, 지하철을 걸어갈 때, 계단을 오를 때 등에도 땅에 기대서 걷는 법을 감각했다. 이런 배움이 코라를 연주하는 과정에도 이어지는 것 같다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쳐도 뮤트는 어렵다.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서 이러고 있으니 죽을 맛이다. 잠시 몸을 뉘었다. 그러자 매트리스 스펀지에 있는 작은 벌레가 스펀지를 다 갉아먹고 나서 나까지 갉아먹는 것 같다. 간지러워서 잠이 안 온다. 겨우 잠들었다 싶으면 벌레들이 얼굴 위로 기어 다닌다. 으으으! 결국 다시 코라 앞에 돌아와 앉는다. 그래 여기서 내가 할 일이 코라 앞에 앉는 거지.


돌이켜보면 연습만큼 젤 쉬운 것도 없다. 과거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적절한 보상도 없이 오랫동안 일했다. 연습은 아무리 느려도 내가 한만큼 쌓이고 나아간다. 연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연습하자. 연습. 연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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