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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의 역사를 따라서

사라진 코라의 음계와 그 뿌리

by 두치


감비아에 오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코라 연주자, 발라케 시소코(ballake sissoko)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발라케 시소코가 코라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라가 감비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라는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음계를 조율하거나 연주하는 방식의 차이가 크고, 각각이 다르게 발전해 왔지만, 감비아에 가장 오래된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코라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가장 먼저 오게 되었다.





산잘리의 집에선 오후 2-3시경이 되면 점심을 먹기 위해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정원으로 모인다. 때로는 망고나무 아래에서, 때로는 모링가 나무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다. 우리는 밥을 다 먹은 후에도 한참을 마당에 머물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코라에 대해서, 서아프리카 음악과 문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다 가버리고 저녁이 되곤 했다.



백인들은 코라 음악이
아랍 음악에서 유래했다 말하지만,
코라 음악은 아랍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어
그건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야


산잘리의 말을 들으니,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차이를 뭉개어 동일한 집단으로 대상화를 하는 것처럼, 코라 음악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돗자리 깔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땀이 뻘뻘나도 시간 가는줄 모르겠다





전통적으로 코라는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음정)에 맞게 조율되거나, 발라(발라폰)와 함께 조율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7음계를 사용했지만, 서양의 음계와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모든 코라폴라(코라를 연주하는 사람)는 자기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조율해 왔다.


그러나 식민지배 이후 서양 음계에 '옳게'들리는 방식으로 코라가 조율되기 시작했고, 다른 서양의 악기(기타 등)들과 함께 연주될 수 있었다. 주로 F베이스의 음계로 조율하는 것이 서양의 입맛에 맞게 조율된 코라라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서아프리카 만데 음악의 멜로디 악기 중 코라를 배우겠다고 선택한 이유도, 다른 악기들과 협연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2023년에 아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가 발라폰을 배웠는데, 이후 한국에서 음계가 달라 다른 악기들과 협연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코라의 역사를 들을수록, 서양의 귀에 '맞지 않는' 음계들, 서양의 방식에 '맞지 않는' 주법들이 사라져 왔음을 알게되어 슬프다.



코라는 피아노의 흰색과 검은색 부분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음계가 있어

(코라 몸의 모든 부분뿐 아니라)
코라 음계(현)에는
하나하나 각각의 만딩카어 이름이 있어
이전엔 다 알고 있었는데
이젠 기억이 안 나


나는 음악을 배운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마치 파란색과 빨간색 사이에 무수한 색깔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음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들어 서양이 정해둔 음계인 도C와 레D 사이에 무수한 음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 코라 음계의 세계가 내게는 무한하게 느껴졌다.


조율되지 않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모든 음악이 개인과 그 사회의 고유한 문화와 삶을 뿌리로 하여 나온 것이라면 음계 또한 하나로 조율하는 것이 아닌, 본디 코라처럼 무한할 수 있다.



누가 코라는 여자가 칠 수 없는, 여성에게 금지된 악기라고 했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백인들이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거야
마치 우리가 여성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바꿔 말했지

여자들도 코라를 쳤어. 내 엄마도 코라를 쳤어. 젤리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자들이 했어. 주로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남자들이 연주를 해왔지. 만데 음악에 노래가 중요해. 남자들은 여자들의 노래에 맞춰 뒤에서 반주를 하는거야. 그래서 연주를 주로 맡아서 해온거지. 노래 하는 사람(아내)과 코라를 연주하는 사람(남편)이 한쌍이 되어 기도를 하러 가는거야

소나(산잘리 딸)도 최초의 여성 코라 폴라라고 하지. 그건 사실이 아니야



산잘리의 말이 맞다. 소나도 여러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여성‘ 코라폴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코라폴라‘로 가르쳤다고 했다. 백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전해진 코라의 이야기들은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백인들이 코라의 음계를 바꿔 놓은 것 뿐만 아니라 코라에 대한 역사까지도 마음대로 바꿔놓았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나는 너에게 전통적인 typical 코라를 가르친다. typical.
그것이 너를 지켜줄 거야
소나도 그렇게 내게 배웠다
근본을 배워야 이해할 수 있어
뿌리를 알아야 너의 것을 할 수 있다



이제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째다. 오늘 산잘리와 네 번째 수업을 했다. 매 수업시간마다 주법을 하나에서 두 개 정도 배운다. 진도를 나갈수록 리듬을 연주하는 방식이 어려워진다.


산잘리는 "서양 음악은 정해진 시간 내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코라 음악은 자유로워야 한다"했다. 실로 여러 패턴의 반주법을 배우고 그 안에서 변주해 나가며 하나의 노래(멜로디 구조) 안에서 얼마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 같다.


그래서 1년 넘게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여러 패턴의 반주 방식을 배우며 서양(현대) 음악과 코라 음악의 근본적인 차이를 느낀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같은 음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느껴진다.





산잘리는 내게 코라를 연습하러 가라 할 때 “기도하러 가라”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코라를 친다.


코라를 치기 시작하니 다시 새가 날아왔다. 새들의 평화를 기도하며 연주한다. 다음엔 나의 평화.. 우리의 평화.. 모두의 평화. 더 이상 짓밟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대로.. 우리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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