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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는 것

내가 배우는 코라 음악의 토대

by 두치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똑똑똑. 옆 방에 머무르고 있는 치카가 왔다. 치카는 10여 년 전부터 코라를 배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많이 다닌, 일본에서 온 분이다. 치카는 나보다 하루 전날 일찍 도착해서, 이곳에 2주만 머물다가 떠날 예정이다.


그는 SNS를 통해 감비아 정보를 찾다가, 맹그로브 숲과 탐조를 할 수 있는 강이 있다며 내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 제안했다. 그의 기준에선 이곳에 도착한 지 6일 정도 되었으니 한 번쯤 바깥에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감비아까지 왔으니 가능한 많은 곳을 가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치카의 제안을 수락했다.


치카와 나는 케레타의 집으로 갔다. 케레타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들의 일정과 여타 많은 것들을 도와주는 노르웨이 사람이다. 케레타의 거실에서 치카와 케레타가 오늘 어디를, 어떤 동선으로 갈 것인지 계획하는 것들을 들었다. 그러던 중 산잘리가 불현듯 거실로 목소리를 높이고 들어왔다.


"케레타. 나는 아직 아침도 안 먹었어. 근데 당장 한 시간 안에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벌써 동선을 다 짜놓으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너희가 나가고 싶은 것을 이해해. 여긴 지루하고, 주말엔 아무것도 할 게 없지. 하지만 적어도 어제 이야기를 했어야 했어. 이렇게 당일 일정을 짜 나는 도저히 움직 수 없어. 나는 오늘 코라를 고치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사람들을 불렀어. 지금 그 일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너희가 나가고 싶으면 나와 상관없이 나가길 바라"


산잘리는 불같이 쏟아내고선 나가버렸다. 나는 치카에게 나가는 계획을 취소하고 천천히 산잘리의 일정을 보고 이야기 하자했다. 사실 코라를 고치는 것을 보는 게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어서 케레타의 거실에서 나와 산잘리를 뒤따라 갔다.



산잘리는 분개 하며 말했다.


너는 아프리카를 여행해 봐서 알지?
여기서는 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
언제 뭘 하고, 뭘 하고, 뭘 하고..
삶은 그렇지 않아! 우리가 군대도 아니고!


나는 산잘리의 말속에서 그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인 조상들의 삶과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


산잘리의 말이 백번 맞다. 나도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동, 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도, 숙소도, 아웃 티켓도 미리 끊어 놓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차가 퍼질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내 여행 루트가 바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획하지 않은 삶은 내게 두려움을, 때때론 공포심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내가 생각한 대로 착착 계획에 맞춰 진행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두려움과 공포를 그냥 받아들여야 할 때가 많다.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을 구분하고, 칼처럼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제국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동남부 아프리카 여행 이후엔 시간을 맞춰서 약속을 정하고, 몇 분이 늦으면 사과하는 등의 시간을 세는 방식이 어색하기까지 느껴졌다.


특히 서울에서 신호등이 깜빡일 때, 지하철이 역에 가까워져 올 때 달려서 건너/타는 일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시간을 지키고 잘 활용해고, 낭비해선 안된다는 생각은 내 몸의 리듬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감각을 마비시킨다. 나를 비롯해 타인의 시간까지도 낭비하지 않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울에서는 자주 불안하고, 숨이 막혔다.


내 생각엔 파란불이 깜빡이면, 다음 파란불일 때 건너면 된다. 기다리면 된다. 시간은 낭비되거나 버려질 수 없다. 애초에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도시에서 살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감각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시간도 돈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걸까.


난 오랜 기간 시간의 노예였다. 서울에서 인권활동을 했을 때 분, 초를 다투며 일했다. 항상 무언가에 쫓겨서 사는 감각이 몸에 스며드니 일요일 밤만 되면 월요일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불안하고 초조해 잠을 못 잤다. 대부분의 것을 주어진 시간 안에 해내야 했다. 시간을 놓치면 난민분들이 소송 기일을 놓쳐 재판을 받지 못하고, 체류 기한을 놓쳐 '불법체류자'가 되고, 체포되고, 강제 송환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제외하고,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은 자아가 고개를 내밀 때면, 꼭 시간을 지켜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낭비되는 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시간대로 무언가 이뤄낼 수 없었다 하더라도, 괜찮다. 낭비된 게 아니다. 다 삶의 과정이다. 흐르는 강을 멈추고 붙잡을 수 없듯이 그게 삶의 속성이다.



2023년, 10개월의 아프리카 종주 여행을 한 후로 좀 더 힘을 빼고 삶의 흐름에, 내 몸의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을 애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종종 결국 이 모든 시간이 멈추고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감각은 내가 삶을 더 사랑하고 잘 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음악과 리듬을 내 몸 안으로 새기는데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거라 믿는다. 내가 코라를 배우는 것은 시간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다 느낀다.




내가 할 일


코라 고치는 것을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새벽 4시 반만 되면 잠에서 깬다. 일요일이고, 아직 잠이 부족하니 ’낮잠을 잘까‘ 싶어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산잘리가 문 앞에 왔다. "너 연습한 것좀 들어보자" 하신다.


산잘리를 거실에 모시고, 연주를 들려드렸다.


산잘리: "내일 더 진도를 나갈 거다. 네 반주 위에 내가 솔로를 할 건데, 네가 단 한 번이라도 반주를 틀리면 나는 내일 아무것도 가르쳐줄 수 없다. 점심 먹고 어디 나가고 싶어?"


나: "지금 밖에 나갈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연습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산잘리: "그래! 저 백인은 돈이 많아서 여기 가고, 저기 가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여기 앉아서 코라 칠수 밖에 없었다! 너도 그걸 알아서 다행이야. 네가 여기서 할 일은 코라치는 거다!"




산잘리가 돌아가고 그의 말이 계속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처음 감비아로 오겠다는 결정을 하고, 구글맵에서 감비아 지도를 펼쳤을 때 내가 머물 곳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곳은 수도에서 40km가량 떨어진 켐부제라는 곳이다. 대부분의 만딩카 젤리가 이곳에서 산다. 아무것도(?) 없는 지도를 계속 보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작년에 서아프리카 젬베, 춤 워크숍 '릴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갔을 땐, 저녁에 레게바도 가고, 이것저것 맛있는 것 파는 까르푸도 가고, 호캉스도 가고 별천지였는데 켐부제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할 게 없다. 그래서 코라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난 하루에 4시간만 코라 앞에 앉아있어도 힘들다. 내가 원해서 이곳에 왔는데, 참 쉽지 않다. 내가 코라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코라를 붙잡고 사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걸까. 산잘리의 삶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코라의 손을 붙잡고 있으니 눈물이 시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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