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보다 더 단단한 것

아쉬움보다 가능성을 믿다

by 달토

2학년 소은이가 한쪽 눈을 가린 채, 호다닥 보건실로 달려왔다.


“상장을 공책 사이에 끼우다가, 그만 공책 모서리에 눈을 스쳤어요.”


앞은 잘 보이고 크게 아프지는 않다지만,

혹시 몰라 잠시 침대에 눕혀 눈을 감고 쉬게 했다.


소은이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동안

나도 곁에 앉아 그 시간을 함께했다.

“무슨 상장이니?”
“체조부요.”


“체조 어떤 종목?”

“마루, 평균대, 도마, 이단평행봉이요.”


“체조 네 종목에서 전부 상을 받은 거니?”
“네.”


나는 순간 놀랐다. 소은이는 2학년 체조부의 엘리트였다.
체조 때문에 우리 학교로 전학까지 왔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체조가 육성 종목인 곳이다.


“그럼 앞으로도 쭉 체조선수 할 거야?”
나는 자연스레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예상 밖의 대답을 건넸다.
“아니요. 4학년까지만 하기로 했어요. 1학년 때부터 정한 거예요.”


그 말이 너무 똑 부러져서, 오히려 내가 아쉬운 마음에 물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아? 실력도 좋고, 체조하려고 전학도 왔는데……”


길쭉한 팔다리에 유연함까지 갖춘, 체조에 딱 맞는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데 소은이는 조용히,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괜찮아요. 기회는 많으니까요.

그 말에 머리를 ‘댕’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공든 탑이 무너질까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수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미 방향이 어긋난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붙잡고 만다.


그런데 소은이는 아쉬움보다 가능성을 더 믿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이 아깝지 않냐는 물음에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단단함이 있었다.


놓는 게 아쉬운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 일러스트 by 달토

✏️ Instagram @dalto_toon


6월 한 달 동안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저녁, 주 2회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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