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내 밭뙈기 하나 - 1

by 달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사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학기 중에 전학을 가거나 오는 친구들이 그저 신기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같은 동네에서 이사를 가는 친구들도 신기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새로 이사 간 집이 어색해서 예전 집 방향으로 갈 뻔했다니까?'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사가 나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사를 가고 내 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좋을 텐데 하고 늘 생각했다. 원래도 좁았지만 내가 커나갈수록 집은 더 좁게 느껴졌다. 거기에 세월과 함께 계속해서 쌓이는 짐들까지 더해져 갔다. 생활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서일까. 대학생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타지에서 서울로 유학을 간 순간 이미 떠돌이 생활은 예정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 시작은 학교 근처의 하숙집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하숙'이라는 개념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몇 안되게 남은 하숙집 중 하나를 어찌저찌 용케 찾아 들어갔던 것이다. 가능한 선택지 중 가장 저렴한 곳이었다. 오래된 가정집을 가벽으로 설렁설렁 나누어 아래층엔 여학생, 위층엔 남학생이 사는 하숙집이었는데 화장실이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하는 밖에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응답하라 시리즈가 따로 없지만 사실 흔한 주거 형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두근거리는 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층에 올라가는 일은 오직 아래층의 보일러가 고장 날 때뿐이었다. 점화 버튼을 누르면 타타탓-하고 불꽃이 이는, 아주 오래된 보일러였다. 그래서 생각보다 고장은 꽤 잦았다. 그렇지만 위층 샤워실을 쓰는 것도 마냥 능사는 아닌 것이, 위층 샤워실은 틈만 나면 물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20대 초반의 남녀 8명 정도가 뿜어내는 머리카락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결국 샤워를 하지 못한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학교를 가기도 했다.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나에게 찬물로 샤워를 하기에 3월의 서울은 아직 꽤나 추웠다. 그렇게 불편함을 참아가며 두어 달 남짓 지냈을까. 어느 밤, 여지없이 밖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 내 앞을 질주하는 쥐를 보았다. 어두웠지만 그날따라 희한하게 달이 밝았고, 그 덕분인지 집안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쥐가 너무 잘 보였다. 덤으로 부엌에서 나던 "찍!" 소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6만 원 더 비싼 고시텔로 쫓기듯 주거지를 옮겨갔다. 원래는 4만 원이 더 비싼데 밖으로 난 공책 하나 사이즈의 창문이 있어 2만 원 더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숙집에 비해 주거 공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버렸지만, 적어도 깔끔하긴 했으니까. 하숙집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먹으로 세게 치면 뚫려버릴 것 같은 벽이었다. 소음을 막아주는 역할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시각 차단 정도의 효과만 있었다.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럴 땐 밖으로 난 나의 2만 원짜리 창문을 소중히 열어보곤 했다. 대학가의 시끌벅적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 후로도 내 주거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동기가 마침 투룸을 반전세로 빌리게 되었다며, 월세를 내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같이 살지 않겠냐는 권유로 시작한 하우스메이트와의 생활은 서로 맞지 않는 생활패턴과 위생관념으로 인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또 분명히 내 분량의 월세와 공과금은 다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집으로 날아오는 독촉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그때쯤 과외 등으로 열심히 벌어 생활비로 쓰고 남은 것을 악착같이 모아 마침내 200만 원가량을 만들어냈다. 그 길로 보증금이 딱 200만 원인 원룸을 얻어 나갈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삶은 평화로웠다. 비록 아래층이 편의점이라 각종 소음과 주취자들의 행패에 시달리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 창틀에서 비가 새는 바람에 집에 곰팡이가 생겨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이사 가는 등의 사건이 계속 발생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고 들어갔을 때 오롯이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집 안을 채운 싸구려 가구마저 내 손으로 골랐기에 애정이 갔다. 비로소 혼자일 수 있었다.

주거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지막지하다는 걸 20대의 절반을 넘게 써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꼭 내 한 몸 편히 누일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얻은 전셋집에서 처음으로 가구다운 가구를 사보고, 아무짝에 쓸모없지만 어쩌면 내 영혼에는 조금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취향에 맞는 그림도 둬보고. 그런 작은 재미를 느낄 찰나, 한국을 떠나 호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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