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료는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by 달토


호주에서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느꼈던 충격 중 하나는 사람들이 나의 배경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굳이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어떤 직업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팀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정도를 물어보았다. (물론 이는 어느 나라 출신인지, 혹은 ethnicity가 어떠한지를 물어보는 것도 상당히 큰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에는 규모가 작아서인지 직원끼리 다들 조금은 더 가,족같은 분위기가 있기는 했다. 이민자의 수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모수가 적다 보니 비율로 따져보면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그런가 출신국은 달라도 이민자들끼리의 유대 비슷한 것도 있었고 다들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삼삼오오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쉬웠다. 어떤 대화 주제가 나오든 “너네 나라에선 어땠어?”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호주 유학생활이나 워홀생활 등을 다룬 유튜브를 보아도 이런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즐겁게 서로의 언어나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얘기하면서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외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금 회사에서는 이런 식의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회사마다, 팀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그러하다. 어느 정도 이전에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고 서로가 같은 1세대 이민자임을 아는 경우, 혹은 호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민자 2세대인 경우 사이에서나 가뭄에 콩 나듯 서로의 문화에 대한 주제가 나올까 말까 하다. 그런 것보다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에피소드나 주말에 했던 재미난 일들, 다음 여행 계획, 국제 정세(?), 음식이나 맛집이야기 등이 대체적인 대화 주제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수록 나는 공허해진다. 나만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나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물들만 바쁘게 움직이는 듯한 연출이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가끔 한두 마디씩을 보태며 대화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가 이 스몰토크를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서겠지.


더구나 그렇게 재미나게 하고 있는 스몰토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상대방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의견을 나누고 같이 떠들지만 그 사이에 미묘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선'이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곳에 그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인인 내가 보기엔 상당히 자신을 많이 오픈하는 것 같은 대화 주제가 사실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반면 내가 생각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주제는 오히려 너무 깊은 대화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나 스스로가 벽을 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디로 벽을 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나의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없었다. 대다수의 동료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의 어디에 붙어있는지를 알고, 한국의 유명한 음식이나 술을 알고 있고, K-Pop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 문화의 눈부신 발전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회사에서 '나'라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데 있어 하등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나 보다. 그들은 나를 '한국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료'로 보고 있었다. 언뜻 보면 굉장히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한국인 이민자로서의 나의 특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회사는, 그리고 나와 일하는 동료들은 이민자로서의 내가 아니라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필요한 것이다. 나의 이메일에는 내 출신과 배경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지 않는다. 내가 하는 어떤 일도, 이민자라는 맥락과 함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큰 회사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누군가를 1세대 이민자라고 판단하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점을 감수하고 넘어서서 호주인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것이 이민자로서의 나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 끝내지 못할 숙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어제 본 드라마의 미친 반전이나 한국 신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식 따위를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것은 한결같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 집에 와서 가만히 있는 남편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이야기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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