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별곡

by 달토

영주권을 받은 지도 1년이 훌쩍 넘어간다. 영주권을 받은 사람치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장편 대하소설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막상 내 이야기를 돌이켜보니 그냥 적당히 밋밋한 단편 소설 한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제법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이주를 생각했기에 전략적으로 학위 과정을 시작했고 버리는 시간 없이 영어 성적과 가능한 모든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채워 놓고 초청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졸업과 함께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아마 이때 겪었던 일련의 일들과 감정들이 "영주권"이라는 이름을 단 이 단편소설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은 목표하던 대로 초청장을 받고 약 11개월의 심사기간을 거쳐 영주권을 승인받았지만 내 자신감이 무색하게도 생각했던 것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호주에 살면서 나는 때때로 비자가 마치 현대판 신분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누군가의 비자 상태를 대놓고 묻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지고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다들 내 비자를 알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말이다. 또 취업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나 비자 스폰서십을 이유로 눈치를 보며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점 또한 그러했다. 알게 모르게 영주권이 없는 사람들은 마치 언젠가 떠나갈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고. 알바 자리 하나를 구할 때도 마치 호패를 내밀듯 내 비자 상태를 써내야 했다. 얼마나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지를 알아봐야 하는 고용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안 그래도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느라 억울할 일이 많은데 영주 비자가 없으면 더 억울할 일이 많았다. 찬 바람만 스쳐도 억울했다. 바닥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살얼음판이었다. 아니,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디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영주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것이다. 어떤 연유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역시 영주권이 없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어봐야 콧방귀 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현실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꽤나 비관적인 나는 영주권을 들고 있는 지금도 영 출발선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당연한 듯이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무엇이 되었든 좇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리 가랑이가 찢어져라 뛰어도 이등시민, 삼등시민 정도에 그칠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이주를 결심하기 전에 이미 다 상상해 보았다. 이렇게 뒤만 좇아 뛰어가는 삶이 될 거라는 것쯤은 이미 알았다.


여전히 세상에 억울할 일은 너무나 많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지도, 줄을 타고 있지도 않다. 영주권의 가치란 그런 것이다.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10억짜리도 아니고 무슨 황금 티켓도 아니다. 그저 이곳에서 살려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거주'라는 권리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 이용권인 줄 알고 있지만, 실은 그냥 입장권이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호주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장기적인 체류 목적이 아니라 몇 달 살기 같은 경우도 많고, 1~2년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지내며 정말 "워킹"도 하고 "홀리데이"도 보내는 사람도 있고, 혹은 조기 유학이나 학위과정을 밟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영주권이라는 목표를 갖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다. 이처럼 목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잠깐 시간을 내어 다른 나라를 경험하는 중이고, 언제든 돌아가면 되니까. 사는 나라를 바꾸기로 결심한 사람들만이 느끼는 이 특별한 슬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는 의식주 중 "주"의 불안정함에서 오는 여러 감정들. 사는 곳을 바꾸려 지금도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이 슬픔을 넘어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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