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 Dec 18. 2024

나도 내 나라 말로는 할 말 많아요


호주에 와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늘 생각만 했던 일이었는데 호주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했을 때 마침 좋은 기회에 바이올린을 구매하게 되어 냅다 시작해 버린 것이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하려면 악기와 활 이외에도 다른 용품들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중에 하나인 어깨받침을 사러 어느 악기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도 바이올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점원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 이미 누군가를 응대 중이던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은 어린 아들과 함께 기타 피크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이민자로 보였다. 직원은 다소 퉁명스러워 보일 정도로 그리 친절하지 않은 태도로 그들을 응대하는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빠르게 그들과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무얼 찾냐는 질문에 바이올린 어깨받침을 찾고 있다고 말했더니 몇 종류를 꺼내와서 보여줬는데 나야 뭐 본들 아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기타 피크를 구경하던 이들이 다시 점원을 찾았다. 점원은 대놓고 한숨을 푹푹 쉬더니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 종류의 피크를 더 보여주면서 가격을 알려주더니 "알아듣겠어? 그래서 이거 살 거야?"라고 물었다. 그 질문이 꽤 공격적이어서 나도 같이 상황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들은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사겠다고 말하고는 몇 달러를 현금으로 계산하고 떠났다. 점원은 다시 나에게 돌아와 과장된 몸짓으로 눈의 회까닥 까뒤집어 흰자위를 보여주면서 "몇몇 사람들은 정말...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걸 보게 되면 이게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린다. 왜냐하면 그 점원은 나에게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손님과 나의 겉으로 보이는 Heritage가 확연히 다르니, 이민 오기 전 나라에 따른 차별일까? 아니면 기타 피크는 고작해야 단돈 5달러도 안 되는 금액이라 매출이 안 나오는 손님이라서? 아니면 그 손님이 물음표 살인마라서?


이 중에 하나, 혹은 전부가 다 뒤섞인 짜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짜증을 증폭시켰을 원인 중의 하나는 어쩌면 '영어'였을지도 모른다. 그 손님의 영어가 조금 서툰 것은 사실이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원활한 것도 아니었다. 흔히들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은근히 돌려 말하거나 could, would, 혹은 did를 써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 더 정중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의 영어는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부족하기는 했다.


호주에 살다 보면 이러한 '언어 차별'을 마주하는 일이 많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독 불친절한 직원들을 만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바쁜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드네...' 같은 짜증이 깊게 파인 미간에서 그대로 읽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비슷한 상황의 예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일전에 어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어떤 직원이 한국인으로 보이는 엄마와 딸이 직원에게 짜증 아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았다. 호주에서 태어난 듯한 어린 딸이 통역을 자처해 상황이 어떻게 넘어가긴 했지만 보기에 편한 광경은 결코 아니었다.


언어가 조금 서툴다고 해서 이런 짜증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살기로 결정했으면 그곳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나 솔직히 성인이 되어 시작한 다른 언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하다. 유튜브엔 어쩜 그렇게 본인이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섰는지를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어마어마한 시간이 같이 콜라보레이션을 해야 될까 말까 한 일인 것이다.


후천적으로 열심히 배운 언어로 다른 나라에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천불 하나쯤은 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내 나라 말을 알아듣기만 했어도 영혼까지 탈탈 털어줬을 텐데 이렇게 안타까울 때가!


인종차별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전 글에서 말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차별 이외에도 앞서 말한 언어로 인한 차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경우 애매하고 찝찝하게 기분이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대놓고 뭐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내 피부색이나 Heritage 때문이 아니라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해서 화를 내는 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자가 검열을 거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누가 와서 똑같이 했다 하더라도 똑같이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그냥 성질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차별은 어떻게든 위험한 상황을 피해서 내가 피해를 볼 가능성을 낮춘다손 치더라도 이런 은근한 차별은 여기에 사는 이상 피할 방도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단기간에 바꿀 방도도 없다.


사실 대다수의 호주 사람은 아주 친절하고 누군가 곤경에 처해있거나 잘 못 알아듣는 상황인 것 같으면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고. 호주 사회가 딱 그렇다. 츤데레 같은 매력이랄까...? 수준 낮은 사람들에게 상처받다가도 친절한 호주인들에게 감동받기도 하는 냉탕과 온탕의 사회.


그래서 결국 이 사회 안에서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이민자 각자의 선택에 놓이고 만다. 저들과 일일이 대거리를 하며 갱생을 시도할 것인지, 혹은 똥밭에서 구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악착같이 성공하고 영어실력을 끌어올려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것인지 말이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픈 타고난 소시민. 여기서 지낸 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저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탭댄스를 추고 있는, 마음이 쪼그라든 이민자 1세대이다. 때로는 저 선택지 중에서 꼭 골라야 하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나도 속에는 천불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못해 흘러넘친다. 할 말이 넘치다 보니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기까지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고르고 싶은 답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간다. 어쨌든 내가 앞으로의 인생을 보내기로 선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