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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May 23. 2024

고독

오래된 문제, 그리고 친구

 고독은 인간의 오래된 친구이다. 고독함이 보통 기피하고자 하는 감정인 것은 아마도 인간 본연 깊숙히 코딩된 행동원리일지 모른다. 야생 속 인간의 생존 전략은 협력이다. 인간은 개별적인 연약함을 협력을 통해 병렬적으로 서로를 연결하여 더 강한 존재가 되어 왔다. 즉, 홀로 있음은 생존 전략 상 약점이 되곤 했고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꺼리게 되는 감정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슬프게도 인간이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 육체와 정신을 가지게 된 이래로 고독은 원죄 마냥 피할 수 없는 끝없는 갈증이 된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평생 쌓아온 세계관 속에서 타인을 구성하여 그 마음을 미루어 이해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완벽히 이해하려 노력한다손 쳐도 논리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이 간극은 인간을 언젠가 고독하게 만든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 받고 싶은 이 마음은 개별적인 존재로서 완전히 존재하고 싶으면서도 자타의 구분이 불필요하게 함께이고 싶은 인간 특유의 모순이다. 이 모순이야말로 프로그램이 흉내 낼 수 없고, 동물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을 만드는 인간의 조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는 누구도 나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인간의 육신을 없애고 정신을 통합하는 인류 진화를 그리며, 이 모순을 이야기한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 고독과 친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학창 시절에는 다양한 시간들에서 다양한 상호작용의 기회들을 접할 수 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이런 다양한 기회들 역시도 근본적인 고독감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많은 기회들 가운데 유대감을 가지게 될 기회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은 고독함을 잊는 데 도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성장해가며, 커리어라는 한 길을 선택하게 되고, 매일 최소 8시간 내외를 쏟아야 하는 직업현장에 들어서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집단과 성향이 급격하게 협소해지게 되며, 그 와중에 체력적인 에너지가 감가하며 홀로 있는 시간 혹은 단조로운 패턴의 사회적 상호작용들이 많아진다. 이 여유로운 공간만큼 고독은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한다. 어쩌면 이 시기가 가정을 꾸리는 적령기인 것은 고독의 영향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결혼, 만남, 소속감 등이 고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나아가 고독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지점들이 훨씬 많은 듯하다. 고독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는 계속해서 매력적이고,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나아가게끔 한다. 알아서 끝없이 발전하게끔 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는 유용한 요소이지만, 끝이 없다는 점에서는 영원한 갈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살아감은 계속해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라는 축복임과 동시에 계속해서 고통을 달고 있어야 하는 저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인간적인 혹은 종교적인 성인들의 가르침들 속에서는 이 고독에 대한 근본적인 초월에 대한 단초들이 있기도 하여, 어쩌면 끝없는 갈증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이 초월의 단계가 무한한 허무주의일지 아니면 고독이 주는 에너지는 취하되, 고통은 경감시키는 보완일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단계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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