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살아가자.
오랜만에 신림동을 갔다. 한때 2년 가까이 공부를 하고자 머물렀던 그 동네는 목적이 뚜렷한 지역이 그러하듯, 변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속에서 누적된 변화는 이 곳을 내게 낯설게 만들었다. 오래된 서점은 음식점이 되었고, 수업을 듣던 학원 건물은 공사장이 되었으며, 내게 체리에이드의 강렬한 달콤함을 알려준 카페는 부동산이 되었다. 변함없이 자리해 반가운 곳들 역시도 그 안은 변화들로 가득했다. 매 수업 사이클이 마치고 보상 삼아 갔던 부대찌개 집의 살가운 주인은 다른 이로 바뀌었다. 훌륭한 기네스를 선보이던 술집은 한산해지면서 메뉴판이 사라지고 태블릿이 한대씩 자리했다. 모든 것이 변했다. 10년 전 번민하던 내가 있던 자리에 앉아 같은 기네스를 마시는 나의 번민도 변화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얼마전에는 고향을 갔다. 갈때마다 항상 할머니 집을 가서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에 인사를 올리곤 한다. 할머니 집은 산 아래의 절이다. 이 곳은 내 유년의 추억들이 켜켜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중해, 언젠가는 많은 돈을 벌어 이 곳을 인수하여 내 유년의 장소가 변함없이 그 모습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 곳 역시 변한다. 거친 하천은 정비되어 반듯해지고, 언제나 나를 살갑게 반겨주던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살피는 나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모르는 이들로 바뀌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시간을 나름대로 살아가는 이 절이 내 유년의 기억과 달라지더라도 괜찮다.
어제는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굽이치는 산세 가운데, 선물같이 등장하는 들판, 그리고 그곳에 서있는 나무의 그림이다. 스물 하나에 어머니와 함께 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오래되어 흐릿해진 것이 아쉬워, 그림으로 보다 선명하게 만들고자 한 내 짧은 그림 역사의 숙원사업이었다. 마지막 서명을 완성하고, 이 그림을 만들길 원했던 것은 이 아름다운 광경의 기억과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 마음이란 것을 발견했다. 낮은 화질의 사진을 새로이 선명하게 그리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며, 모호한 부분은 적당히 그럴듯하게 칠해졌다. 그 순간순간에는 내 해석이 개입했고, 어떤 수를 써도 그 당시의 실체적 풍경은 내게 오지 않았다. 과거를 떠올릴수록 과거는 지금의 해석에 종속된다. 지나간 현재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
사람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를 떠올린다. 좋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좋았으면 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 향수와 기대는 결핍이다. 이 결핍은 언제나 채워질 수 없기에 끝없다. 이 영원한 부족함에 종속되면서 고통을 놓지 못한다. 좋았던 과거를 지금에 펼쳐내고자 하는 노력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과거의 사진을 그려내면서, 흐릿한 디테일을 현재의 감각과 상상으로 채워 내듯, 재현된 과거는 현재의 것일 뿐이다. 그 그리움의 표현은 자체로 의미가 있지, 과거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변화 속의 현재를 살아가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생긴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중함을 발견하고, 때로는 변했으면 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지듯.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Carpe Diem이라는 격언이 말해주듯, 지금의 시간에 펼쳐진 수많은 희노애락을 디테일하게 마주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