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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May 25. 2024

버려진 장미와 스타벅스 리유저블컵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가치를 가졌다.

 회사에 장미꽃 세 다발이 왔다. 보아하니 회사의 파트너의 생일이고, 그 팬이 선물해달라고 회사로 보낸 모양이다. 수십개의 장미꽃은 정갈한 모습으로 단단히 모여 있었다. 장미의 대부분은 환영받고, 그것을 받아 든 이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곤 한다. 만일 장미들의 사회가 있다면, 그 자존감과 자부심은 굉장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전달하는 소중하고 환영받는 존재야! 하는 믿음이 확고 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 온 장미들은 그 자존감이 일거에 박살나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 파트너는 회사에 오래전 계약이 만료된 이 였고, 그래서 이 장미들은 처치 곤란한 입장이 되어 라운지에서 냉랭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니 건드리기도 난처하고, 그렇다고 더이상 담당자가 배정되어 있지 않은 옛 파트너에게 누가 전달을 해야 하는 가의 소관 문제도 딱히 우선순위가 높은 의사결정은 아니었다 보니, 하루정도 장미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이내, 그 파트너의 옛 관리 부서였던 한 직원이 공지를 올렸다. 필요하신 분들은 장미를 가져가셔도 좋다고. 아마도 파트너가 마음만 받고, 실물들은 받지 않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렇게 이 장미들은 본래 전달하기로 했던 행복을 끝끝내 적합한 이에게 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갈 길 잃은 장미들을 바라보다가 세 송이 정도를 자리로 들고 왔다. 본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건만, 미니멀함이 오랜 시간동안 누적되다 보니 어느새 여러 잡동사니들로 맥시멀해진 자리에서,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을 하나 꺼내었다. 이 리유저블 컵 역시 나에겐 난감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한때 스타벅스의 50주년을 기념해, 환경을 생각한다는 명목으로 배포된 이 컵은 당시 대기 인파를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였다. 그 트렌드에 영합해 하나를 챙겨온 나는 이 컵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한 해가 넘도록 리유즈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쩡하면서 단단한 이 컵을 그냥 버리기도 꺼림칙하여, 이 컵 역시도 방치된 처지였다.


 장미와 리유저블 컵, 이 두 갈 길 잃은 이들을 두고, 나는 꽃을 자르고 다듬어 리유저블 컵에 꼽았다. 이내 (내 시선에) 그럴싸한 화병이 탄생했다. 이 화병은 직선과 무채색으로 가득한 한 사무직의 건조한 자리에 강렬한 붉은 빛과 초록색, 그리고 곡선들의 변주를 선사했다. 최적화되고 효율화된 환경에 지친 시선이 이 화병에 머물 때, 미묘한 심리적 이완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이 자연을 즐기러 가는 것, 그리고 화분을 키우는 것의 의의들이 문득 공감이 되었다. 직선은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면서도 인간을 고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선에 지친 우리는 자연의 곡선을 갈구하고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가 보다. 그렇게 이 갈 길 잃은 이들이 모인 조악한 화병은 내 자리의 자연이 되어, 시선이 머무는 한 순간의 휴식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었다. 비록 이 휴식의 시간이 얼마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가치들로 이 공간과 시간들을 채워 내는 것을 보며, 문득 나는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어떤 가치를 채워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반성이 들기도 하였다.


 몇 번씩 이 화병을 바라보며, 이 세 송이 장미가 나중에 장미 사회에서, 나 때는 말이야 냉대도 받아보고, 파란만장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이 말이야~ 요새 젊은 장미들은 매번 힘 안들이고 사랑받을 생각만 한다니까~? 하고 의기양양해할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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