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든다.”는 표현은 참 흥미롭다. 이 표현을 조금 풀어보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존재가 들어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마음에 든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마음속에 들어가 있는 그 존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들여다보며, 우리는 이 존재를 인식하고, 생각하고, 아끼게 되고, 그러면서 이 존재는 우리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으며 자유롭게 떠다닌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처음 그 존재를 마음에 담던 그때의 행복함을 또 누리면서 더 키워나간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는 신호들로 내가 아닌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이 이루어지면 신체의 작용을 일으켜 반응한다. 즉, 실제로 있는 타자와의 조우가 반응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인 셈이다. 다만 인간이란 존재는 사유와 상상이라는 능력을 통해서 내 감각기관이 인지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도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능력들을 통해 더 고도화된 관계와 구조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강하게 비약하자면 이것이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런 존엄함의 극치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이해관계나 본능을 넘어선 긍정적인 관계, 사랑.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마음에 든다.”라는 표현이 시작점이고, 함께 함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들여놓는다. 이렇게 들여놓은 다음에는 당장 만날 수 없더라도 우리는 마음속의 그 사람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애정을 키워간다. 마음속에서 과거 함께한 기억들을 되새기고, 지금의 설렘과 행복을 느끼면서, 미래의 관계와 모습을 상상한다. 이 모든 과정은 애정을 더더욱 증폭시킨다.
물론 이 과정은 항상 긍정적으로만 커 나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내 마음속에서 조우하는 타인은 나의 욕심 및 기대들과 어울리며, 실제의 타인의 입장과는 달리 내 안의 기대 역시 증폭시켜 나간다. 그런 결과로 실제 상대방의 태도와 내가 기대하는 상대방의 행동의 불일치하며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랑은 내 세계관 속의 상대방의 모습과 실제 상대방의 세계관을 건강한 갈등을 통해 조정하고, 맞추어 나가며 애정을 증폭시켜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이 계속해서 일치하지 않고,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갈등들이 지속되면 결국 마음속에 들어있던 존재는 고통을 만들어 나간다. 과도기적으로는 애정과 고통이 동시에 커가면서 고민을 하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그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 우리는 그 존재를 마음 속에서 내보내게 된다. 즉,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로 종결되는 것이다.
어떤 작용을 마주하면 그에 대한 반응을 하는 작용과 반작용은 세상을 구성하는 주된 원리일 것이다. 이러한 원리 속에서 단순히 상대방을 마주하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상대를 마음에 들여 더 오래도록 더 깊이 마음을 가꿀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은 아직까지는 인간 고유의 축복이자 고통이다. 다만 그 축복과 고통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우리는 더 강렬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든다.”는 표현은 아름답다. 마음에 들여놓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속에 들어가서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행복해지는 존재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