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추천해주는 맛집들
용산 전자상가 뒤켠의 골목에 한 보쌈집이 있다. 그 보쌈집은 내가 살면서 먹어본 보쌈 중 단연 최상위의 보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체인점 보쌈집이 오랜 유통의 끝에 수분을 잃은 고기를 애써 쪄보지만 그 색감과 질감을 잃은 것과 달리 이곳은 보란 듯 촉촉하고 밝은 자태의 고기를 내어 놓는다. 이 보쌈을 보쌈김치와 함께 먹으면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질감과 함께, 김치의 달콤함이 고기의 맛과 유려하게 어우러진다. 그러면서 가격대는 체인 보쌈집의 가격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더 나아가 고기 추가를 하면, ‘고기를 더 준다’는 정의가 무색하게, 후한 인심으로 보쌈김치까지 한덩이 내놓으며, 상법상 계약의 범위를 훌쩍 넘어 인류애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정을 한껏 펼쳐 놓는다. 그렇게 까다로운 입맛이 아니지만 그만큼 딱히 쉽게 칭찬하지도 않는 무덤덤한 입맛을 가진 내가 찬사를 마지않는 음식점은 이곳을 포함하여 몇 되지 않는다.
이 보쌈집을 언제 처음 갔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곳을 들어가게 된 계기는 오래된 간판 때문이다. 이곳의 간판은 투박한 글씨체로 거대하게 가게명이 적혀 있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새겨져 있었다. 세월이 새겨진 간판. 그것은 내게는 커다란 신뢰와 기대를 가지게 하는 요소이다. 어느 순간부터 맛집을 찾고자 하면,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광고의 시대 속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애써 추천 및 보증 광고에 대한 표시 지침을 계도하려해도 자본 앞에 소신을 잃은 리뷰들은 넘쳐난다. 인스타그램 역시 복병이다. 가게의 디자인 역시 먹는다는 통합적 경험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인스타그램은 많은 요식업을 인스타 최적화된 트렌드의 인테리어로 유도하여, 음식의 내러티브와 전혀 조화되지 않는 끔찍한 식당을 양산했다. 그러한 공급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고하게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리뷰어는 세월일 것이다. 거시경제학의 가장 뜨거운 논쟁도 이 시간의 힘을 전제한다. 어떠한 왜곡된 시장 질서 하에서도 시장은 시간을 들이며 최적의 균형을 찾아간다는 명제에서, 고전학파와 케인지언의 학자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짧느냐를 토의하였지, 시간의 힘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꼼수는 정수를 이길수 없다고, 순간 사람은 현혹할 수 있었던 식당은 결국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시간이 검증해주는 이러한 식당은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간판을 걸어둔 식당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편 이 식당이 자리한 지역인 용산은 최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풍부하게 팽창하고 있는 곳이다. 대통령이 자리를 옮긴 데다가 서울 중심부에서 오래된 건물들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한때는 전자 제품을 사려면 반드시 와야 했던 용산 전자상가도 과거의 산업들은 인터넷 커머스로 넘겨주고, 비싼 물류창고로 전락하고 있어 어떻게든 용산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용산 개발계획들은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고, 이미 그 변화들은 신용산 부근부터 시작되어 왔다. 트렌디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은 과거 역 앞에 있던 경제 발전기의 애환들을 담은 거리를 대체하였다. 많은 오래된 간판들은 그 교체들 속에서 사라져 간다. 옛것이 가고 새것이 오는 흐름은 불가피하다. 오래된 간판의 숙명은 소멸이고, 그 자리를 꿰찬 새로운 간판이 시간의 검증을 받아 훗날의 오래된 간판이 된다. 현 시점의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간판만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함과 아집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오래된 간판의 보쌈집이 오래도록 남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집은 내게 많은 고민과 사유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