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층이 넘는 회사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5기 있다. 이중 모두가 기피하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다. 다른 엘리베이터들은 모두 하나의 운영 시스템(이를 중앙이라고 하자)에 귀속되어 있어서, 만일 한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부르면 가까운 것이 오고 버튼을 끄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엘리베이터는 독특하게 독립된 버튼을 가지고 있으나 중앙의 운영 시스템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다. 즉, 다른 엘리베이터를 부르면 이 엘리베이터도 가까이 있으면 서는데, 이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버튼에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반응하지 않는 식이다. 이렇게 적으니 매우 복잡한데, 이런 복잡한 시스템의 결과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일단 보통 사람들은 이 엘리베이터와 중앙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모두 누른다. 중앙 엘리베이터가 오고 중앙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꺼진다. 하지만 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남아있어, 뒤늦게 이 엘리베이터가 온다. 이 엘리베이터가 먼저 도착해서 그걸 타고 내려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거의 매 층마다 활성화된 버튼으로 인해 30층에서 21층까지 모든 층에 멈추고, 내려가는 시간은 두배 세배 걸리는 참사가 벌어진다. 하필이면 이 경우에, 이 친구는 잡히는 순간 중앙 버튼도 비활성화 시킨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사실상 이 엘리베이터가 먼저 잡히면 그냥 1층을 눌러서 보내 버리고, 다시 중앙 엘리베이터를 잡곤 한다.
하루는 그래도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믿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30층에서 이 친구에 탑승했다. 여지없이 29층에서 멈춰서는 문을 열어 제끼는 녀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치밀어올라 바보 엘리베이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득, 이 녀석에게 살짝 미안함이 느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아이는 그저 프로그래밍 된 바대로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을 뿐인데. 실제로 빌런은 이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설계한 이가 아닌가? 이 모든 현장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상은 그 설계자임에도, 일선에서는 다들 엘리베이터를 탓하기 바쁘다.
이런 생각에 닿자, 모종의 동질감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일하는 모습 역시도 바보같이 설계된 길을 성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이 엘리베이터와 같지 않을까? 주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심 답답해 할 수도, 비판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동료들과 늘상 투덜대듯이…) 어쩌면 이 바보 엘리베이터도, 분업이라는 경제 사회의 위대한 발명으로 인해 지시와 수행으로 분리된 업무 체계의 무고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바로 뚫어보지 못하고, 괜시리 성실한 엘리베이터만 탓하던 내가 오히려 바보 아닌가! 오히려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는가를 더 들여다보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이 엘리베이터에 대한 미움을 접어 둘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추정컨대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용으로 따로 배정된 기계일 것이다. 그래서 미묘하게 독립적인 운영을 하는 것인 듯하다. 이 애매하게 걸쳐진 연계성(완전 독립되지 않고, 중앙에도 잡히는 형태)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구나 하는 이해는 답답함과 미움을 어느정도 상쇄시켜준다. 그래서 이제는 열심히 묵묵히 일하는 이 엘리베이터를 보며 조금 더 따듯하게 대하기로 하였다. 퇴근길, 어김없이 바보 엘리베이터는 제일 먼저 도착하여 문을 열어 제꼈다. 나는 온화한 미소와 친절한 손길로 1층을 누른 후 닫기 버튼을 누르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친절과 효율은 별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