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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Nov 15. 2024

내가 사랑한 시간들

 저녁 시간이 살짝 지난 대학가의 거리. 평소라면 굳이 갈 일이 없었겠지만 그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친구와 밥한끼 하기 위해 가게 된 거리다. 거리에는 현란한 간판들과 인파를 힘겹게 피하며 더듬더듬 전진하는 승용차,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 곳은 대학가. 이 사람들의 태반은 학생들이다. 의기 양양하게 무리지은 야구잠바들, 그 등판에 큼직히 새겨진 학교의 로고, 세탁 후 처음 입은 듯한 멀끔한 옷들을 입고 한껏 머리를 세운 아직 여드름 자욱이 완연한 남학생, 그 옆에 서툴게 세팅한 머리와 익숙치 않아 보이는 짧은 청치마를 입은 여학생, 그들이 들고 있는 일일호프 호객 간판. 아 아름다운 광경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대학가의 풍경이다. 이 아름다움은 흔히 이야기하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레이어가 아니다. 그 깊은 언저리 내 기억들과 공명하는 그 어드메의 층위다. 내가 사랑했던 시간들, 내 어렸던 날들.


 지금도 충분히 어리고 젊어서 이런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귀여울 수 있겠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한 힙합 듀오가 나이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간다고 일갈한 곡이 명곡으로 꼽혔듯, 각자의 감정은 귀여울지언정 그 내용물과 체감까지 귀여우리란 법은 없다. 지난간 것들에 대한 오묘한 마음은 어린 아이에게도 아련하고 소중하다. 그렇게 이 붐비는 대학가에서 이 앳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진 모든 것들에 나의 시간을 떠올린다. 아직 환멸을 많이 담지 않은 눈빛들, 시시콜콜한 것에 터져나오는 웃음들, 내일 더 나아질 신체들, 그리고 아직 광활하게 발산하는 선택분기들. 아 이 모든게 아름답다. 그 모든걸 가졌던 나의 그 시간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지갑은 메말랐지만, 상상은 풍족했다. 지식은 소소했지만, 고민은 창대했다. 특히 서툰 운전을 하는 이름모를 타인에게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옹졸하진 않았다. 어딘가 있을 고통과 이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마음 아파할 줄 알았다. 허울 좋은 이야기들에 그게 안될 수없이 많은 지식들을 떠올릴 만큼 환멸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완벽한 체제와 사회를 짜보겠다고 책 몇줄에서 아전인수격으로 모아둔 빈약한 의미들을 애써 엮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은 자체로 올곧았던 것이고, 순수했던 것들이다.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내어 오늘까지 도달했다. 아, 내가 사랑한 것은 그 순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때의 나는 그 시간들을 딱히 애정하진 않았다. 수없는 결핍들 속에서 풍요를 누리는 어른들을 선망했다. 수없는 선택들 속에, 그 어떤 좋은 선택들만 해서 잘나가는 미래를 기대했다.(물론 당시 비트코인을 사지 않는 선택부터 무언가 잘못되긴 했다.) 항상 어른이 되면, 돈버는 사람이 되면, 영향력있는 이가 되면… 그렇게 결핍에만 눈돌리던 시절. 그 시절을 지금와서 사랑한다는 것은 역시나 지독한 역설이다.


 하지만 이 역설은 통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내 지금이 내 당시를 사랑하듯, 내 훗날은 내 지금을 사랑할 것이다. 영화는 종막으로 다가설수록 일어날 것에 대한 기대보다 쌓아온 것들이 만드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미 재생해버린 구간, 이미 관측해버린 시간은 사랑스럽지만 변할수 없다. 지금의 재생 위치는 미래를 쌓아간다. 살아가면서 나는 또 변하고, 어쩌면 더 메말라가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을 써나가야겠다. 훗날의 내가 질투할만큼 지금을 더 사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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