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느낄때

by 달우

친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입원했다. 뇌쪽의 문제로 응급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잘 회복만 하면 된다. 그 사실을 전해준 것은 그와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였다. 이번주 즈음에 그 여자친구와 인사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말한지 2~3일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첫 인사를 하게 된 것에 비통한 마음이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한달 남짓 남은 결혼식으로 인해 벌려져 있던 시급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기에 곧 신혼 집으로 이사갈 친구의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일을 도왔다. 그 모든 것은 그가 다른 일에 신경쓰지 아니하고 잘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녀도, 나도. 함께 살아서, 함께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연초부터 배우며 만든 도자기가 비로소 가마에 들어가서 완성되었다. 소중히 챙겨와 가족들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도예 스승님은 전통의 방식을 고집스레 고수하는 분이다. 흙을 하나하나 오랫동안 밟아 섞고, 동력이 없는 물레위에 펼쳐 조금씩 손으로 돌려가며 형태를 만든다. 그리곤 가스같은 연료가 아닌 장작을 때는 거대한 가마로 구워내었다. 그렇기에 그 형태는 흔히 볼 수 있는 매끈하고 대칭적인 것이 아니다. 거칠기도 하고, 오로지 손의 에너지로 만들어낸 불규칙한 주름들이 가득하다.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완벽은 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의 극치다. 전통의 방식은 기술이 자연을 극복하는 선을 넘지 아니하고, 자연이라는 이데아를 모방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에 필연적인 불완은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된다. 그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즐긴다. 그것은 사랑이다.


어릴때 외가를 가면 항상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수많은 것들을 차에 실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김치와 과일을 비롯한 음식들과 식재료들이고, 때로는 투박하고 오래되었지만 단단하게 내실있는 물건들이다. 그렇게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형, 그리고 나는 5층을 몇번이고 오가며 그 물건들을 나르곤 했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께선 돌아가셨지만, 그 전통은 세대를 넘어 어머니와 나에게 계승된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 가방에 어머니는 쌀과 양배추, 청양고추, 버섯, 두부, 소고기, 티백, 맥주를 챙겨 넣어주신다. 그리고, 형은 겨울이라며 북유럽의 회사가 만든 온풍기를 주문해준다. 집에서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독립해 살아가는 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아가길 위하는 그 마음을 느낀다. 이 마음은 어느 선대부터 이어졌을까? 그것은 사랑이다.


내가 쓰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2024년의 내 통계를 요약해서 전해주었다. 올 한해 가장 많이 들은 곡이 흘러나온다. 다정하지 못한 자신을 아쉬워하며, 사랑을 알기 전까지 죽을수 없다고 읊조린다. 건조하디 건조한 마음으로 살아왔지만서도 사랑을 궁금해하고 추구해왔나보다.

TV에 나오는 일상속 빌런의 이야기, 미처 녹지못해 거뭇하게 신발을 적시는 길가의 눈덩이, 미움으로 가득한 커뮤니티의 글들, 아파트 한 집앞에 붙여진 문앞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날카로운 글귀, 우편함에 꽂혀진 청구서, 위협적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자동차…

미워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

할머니께서 4명의 자식들에게 사주고 지금은 내 방에 있는 따스한 오리털 이불, 열대식물 주제에 이 혹한을 버티며 새 잎을 피워내는 내 방의 세 식물들(식물이, 물식이, 가람이), 멀리 보이는 아파트 창가에 서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얼마전 전속계약 종료를 통보받은 아이돌 그룹의 최근 히트곡, 날이 춥죠?하며 격정을 건네는 노쇠한 택시기사의 중저음, 밤중에 한강변을 수놓는 건물과 자동차의 빛들, 그리고 그 안에 서린 각자의 사랑들.

사랑할 것도 많은 세상이다.

사랑을 느껴보자. 더 따스하게 세상을 살아가보자.

사랑을 나눠보자. 더 따스하게 세상을 대해보자.

아름다움을 담은 찻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차. 살아감은 어쩌면 그보다 더 거창하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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