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by 달우

철원에서 군복무를 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내가 있던 부대를 통솔하는 대대장이 빨리 눈이 내려야 한다고 옆 장교한테 말했다. 혹한의 제설 작전을 경험했던 나는 ‘오 역시 우리의 주된 적은 간부…’라고 생각하며 그 대화에 귀 기울였다. 대대장은 이어서, 눈이 내리면 왜인지 몰라도 부대 구성원들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증명할 순 없겠지만, 자살이나 폭력과 같은 사고 발생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이유들을 내어 놓았다.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였다. 며칠 후 부대에는 눈이 내렸다. 산간의 철책선 너머 인적이 끊긴 DMZ는 하얗게 덮였다. 비록 그 풍경을 보는 나는 빗자루를 들고 강한 추위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며 대대장의 말이 공감되고 이해가 되었다.


군대에서 눈 내리는 것을 바라거나 좋아하면 눈총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왔지만, 난 항상 눈이 내리는 날을 기다리고 좋아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눈 내리는 날들을 사랑하여, 첫눈, 함박눈, 눈사람, 눈오리 등 눈과 관련된 것들은 긍정적인 감상들이 많다. 이러한 눈의 즐거움은 아마도 하얀 색상이 가장 주된 이유일 것이다. 하얀 색은 가장 불순한 색이면서 가장 순수한 색이다. 모든 색의 빛을 섞으면 하얀 색이 나온다. 우리가 순백의 어떤 것을 보며 느끼는 경외심과 같은 감정은 그 모든 것을 품은 것에 대한 경의이며, 또 안정감이다. 또한 하얀 색이 가진 가능성, 그 위에 무엇이든 표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시작하는 때의 그 설렘들을 느끼게 해준다.


눈은 이 하얀 색상으로 세상을 덮는다. 단언컨데 눈이 오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기상 현상 중에서 가장 극적인 시각적 변화를 주는 현상이다. 여름 초목이 푸르러 지는 것이나, 단풍이 들고 지는 모든 계절은 세상의 색상을 전체적으로 바꾸긴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대부분 점진적으로 며칠에 거쳐 진행되는 반면, 눈은 하룻밤새에도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눈의 마녀, 겨울 왕국 등 눈은 마법과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가 눈을 사랑하는 것은 항상 점진적이고 예상 가능하게 펼쳐지는 세상 살이에서 이런 마법 같은 일을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마법 같은 감정인 사랑이 눈 오는 날의 감성에 가장 시너지를 내는 것도 이와 같은 연계가 아닐까 싶다. 또는 반대로 눈 오는 정취를 로맨틱하게 느끼게 되고, 그러한 코드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들 역시 이러한 연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연말 연초에 내리는 눈은 우리의 마음을 전환한다. 눈은 모든 것을 담았으면서, 아무것도 담지 않은, 가장 불순하면서도 순수한 색상으로 한 해를 닫으면서 새로운 해를 여는 시점에 우리의 주변을 덮는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추억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기약한다. 올 해의 마무리는 시원 섭섭하지만, 미화되는 과거의 경향성에 따라 대체로 좋은 기분을 선사한다. 그리고 새해 더 나아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설렘을 부여한다. 내가 눈 내리는 날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 모든 긍정적인 느낌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눈 오는 날, 이 에필로그이면서 프롤로그가 되는 시간들이 이 글을 보는 모두에게도 행복함을 가져다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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