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입니다.
머리를 쓸어올리는 그녀의 모습.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모습이었다. 깨질듯한 강렬한 두통이 엄습해온다. 남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나 침대에 반쯤 걸쳐 앉았다. 양쪽을 더듬어 보지만, 항상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침대 아래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화면을 확인했다. 아침을 가리키는 시계, 뉴스 기사 어플, 소셜 미디어 어플에서 간밤에 보내온 쓸모없는 푸쉬 알림들, 빨갛게 경보를 보내는 배터리 표시. 휴대폰을 내려놓자 어제의 기억들이 하나 둘 돌아온다.
머리를 쓸어올리는 그녀의 모습. 그 자그마한 얼굴과 반달과도 같은 눈웃음, 그 안에 영롱한 검은 눈동자, 그리고 눈과 호흡을 맞추어 미소짓는 입술. 생기있게 빛나는 입술. 그녀는 강아지와 같은 해맑은 미소를 가졌다. 남자는 평소 고양이 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형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소리다. 세상에는 이상형과 함께하지 않았지만 행복한 연인들이 훨씬 많다. 이상형과 사랑하게 되는 모습 글과 생각으로 말하는 영성과, 깊은 수행 끝에 체험으로 느끼는 영성의 차이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다. 매혹은 머리가 결정하지 않고, 영혼이 돌아버리는 어떠한 순간이 결정한다. 신비주의를 빼고 말하면,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평소의 선호와 결핍이 충만히 채워질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가운데, 생리적인 끌림, 착실히 쌓여온 고독과 기대가 적당히 맞물려서 결정될 것이다. 아, 그리고 몇잔의 와인이 부리는 은은한 화학 작용은 촉매가 된다.
와인. 유리 안에 고여있는 붉은 와인. 그 주변에 너절한 맛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 안주거리들. 그리고 그녀. 그것은 멈추고 싶던 순간들이고, 행복했던 기억이다. 그렇지만 멈춰지지 않은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멈춤을 탄원했지만 단 한번도 들어준 적이 없는 시간은 냉혹하다. 그 상태에서 멈추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않기에 결국 그 관계와 상황을 늘리고 싶었던 남자는 이내 사랑을 이야기하고, 관계의 파고를 기어코 만들어버렸다. 그전까지도 그냥저냥 좋았는데, 이 격변은 모두 무정한 시간 탓이다.
고백은 일종의 도박이다. 어떤 고백이든 실패의 리스크는 크고 작게 존재한다. 충분히 상대의 호감을 확인했을지라도, 상대의 상황, 감정, 트라우마, 심지어는 성적 지향까지 모르는 것은 모두 리스크이고, 그에 따라 거절당할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대와 긴장이 공존한다. 남자의 고백은 상당한 리스크 위에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흔히 말하는 친구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한 바, 그것은 안전하고 즐거운 지각을 요란하게 움직이는 사건이었다. 이런 높은 리스크의 고백은 결과가 규정한다. 성공하면 로맨틱한 승부수, 실패하면 경솔한 표현이다.
남자가 그 결과를 확인한건 오전이 채 가기 전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예감 했을 것이다. 그녀를 보내주고 집에서 괜시리 몇잔의 술을 더 들이킨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섞인 술은 그 예감을 내버려두고 잠이나 자라는 듯 그를 쓰러뜨렸지만, 아침을 맞이한 그의 뇌는 이제 수습해야지? 하는 투로 기억의 편린을 되살려 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불안한 예감 또한 다시금 되살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울린 진동과 그녀의 메시지는 쐐기를 박았다.
실패한 도박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허탈만을 남긴다. 그렇게 끝인 것이다. 이 판엔 개평도 없다. 그 관계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세워졌고, 이제는 그녀와 예전처럼 시간을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경솔한 표현의 대가이다. 이것은 참 서글픈 원리다. 큰 호감을 표현한 것이 왜 이전보다 못한 관계로 이어져야 하는가? 남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내 이해한다. 관계가 지속된다손쳐도 이미 상대를 연인으로 삼고 싶다는 남자의 패는 한번 열린 바 있다. 그 사실은 여자의 마음에 경계를 만든다. 남자의 호의나 여러 표현은 그 경계를 타고 어떠한 의도로 비춰질 것이다. 사실 남자 역시도 그렇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여자가 여지를 주거나 주었다고 오인 받을 소지가 된다. 이미 여기서부터 이전과 같은 편한 소통은 사라지고 머리아픈 입장이 오가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은 도박 끝에는 서글픈 단절이 있다.
서글프다. 이 서글픔은 오랫동안 남자를 괴롭힐 것이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 태생 자체로 냉혹한 것이 거절이다. 남자 뿐만아니라 거절한 여자도 나름의 고통을 감내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 혹은 좋아한다. 그 마음을 전한다. 상대는 모종의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뜻을 전한다. 이 문장들 사이에는 어떠한 악의도, 나쁨도, 왜곡도, 뒤틀림도 없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고통이 태동한다는 것은 인간사와 관계의 야속함이다. 인간은 기대한다. 남자는 여자와 만나길 기대했다. 여자는 종래의 관계가 흔들림 없기를 기대했다. 고백은 그 두 기대를 의도치않게 파괴한다. 그렇기에 고통스럽다. 인간은 기대하기에 고통받는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다. 무고한 많은 행동들은 의도치않게 누군가의 기대를 파괴하여 고통을 만든다. 하지만 그 무고한 행동들은 모두 예외없이 어떠한 행복을 추구하며 혹은 기대하며 이루어진다. 실제로 덕분에 많은 행복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고통은 행복의 비용이다. 그렇기에 비용을 피하고자하는 이는 행동을 회피하면서 현상을 유지하고자 한다. 행복을 늘리고자 하는 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러 행동을 하며 움직인다. 그 외에 각자의 서로다른 기조를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는 서로 행동하고 행복하고 고통받는다. 차라리 성향이 동질적이라면 일정한 질서라도 생기겠건만, 역시나 사람 살이는 쉬울리 없다.
남자는 밥을 먹는다. 고약한 숙취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지만, 먹고 움직여야 풀린다. 가만히 있으면 끝도 없이 하루종일 괴롭힌다. 어느 식품회사가 만든 냉면을 들이킨다. 대충 삶아 질긴 면과 지나치게 시큼한 물의 조화가 조악하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만큼, 남자의 숙취만큼 엉망이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먹어야 나아진다. 남자는 알고 있다. 이 숙취는 결국에는 끝날 것이고, 곧 더 말끔한 정신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걸. 처음 술을 마시고 맞이한 숙취는 영원할것 같이 고통스러웠지만, 살아감과 경험과 역사는 모든 것의 유한함을 가르쳤다. 그렇게 괜찮아 질 것이다. 다 괜찮아질 것이고, 또 어느 날 좋은 기분으로 술을 마실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