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다시 제주 올레길

여행과 일상 사이 그 어디쯤

by 달여리
프롤로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걷고 싶어 떠난 길, 그 사이 4개의 트레일 1,630km를 걸었다. 몸은 지쳤지만 왜인지 더 걷고 싶었다. 반동이 관성처럼 남아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자발적 비수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터였다. 더 이상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돌아온 게 12월 말이었고, 곧 어물쩍 2025년 새해를 맞이했다.


빈둥거리는 게 일이었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찌뿌둥했다. 맛난 거나 잔뜩 먹고 한동안 누워서 뒹굴거렸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베트남에서부터 치면 한 달이 넘도록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좀 불었다. 무엇보다 답답했다. 처음엔 목적 없이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운동 삼아 아내의 출근길에도 걸어서 동행했다. 30분 남짓 함께 걸으며 나누는 그 대화의 시간이 즐거웠다. 문득 올레길이나 다시 걸어볼까 하고 생각이 든 건, 그렇게 출근길에 동행하며 별스럽지 않은 농담을 던지던 와중이었다.


빛이 좋았고 겨울치곤 날이 따뜻했다. 한라산은 뽀얗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제주를, 이곳 서귀포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다시 걷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몸도 마음도 걷고 싶다고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제주 올레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완주했던 건 2015년 여름이었다. 꼭 10년 만인 올해, 그러니 다시 완주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땐 여행자 신분이었으나 지금은 주민 신세가 됐다. 어찌 풍경이 좀 달리 보일까. 아니, 그 사이 길이 변하긴 변했을까. 대신 느슨하게 완만하게 걷는 게 좋겠다 싶었다.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서의 걸음이었으면 했다. 아직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지 못한 아내와도 주말이면 한 번씩 같이 걷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해 다시 회귀하는 그 번거로운 과정이 과연 어떨지. 여행도 일상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한 이 걸음을, 낯섦과 익숙함을 한데 뒤섞어 일상처럼 또는 여행처럼 즐겨보고자 한다.


달마다 2~3코스씩 1년에 나눠 걸어보기로 한 걸, 1월에 시작해 5월에 끝냈다. 정해진 날도 별다른 일정도 없었다. 내키는 때에 내키는 대로 걸었고, 그래서 이야기는 길의 순서가 아니다. 그 사이 겨울에서 봄으로 제주의 계절이 바뀐다.


주구장창 걷는 이야기, 그러나 조금은 다른 뉘앙스. 어쨌거나 다시 길 위로 선다. 집에서 집으로. 차를 타고, 때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얇은 배낭과 카메라 하나 덜렁 메고 가벼이. 이미 봤고, 또 처음 만날 장면들 사이로. 오래된 기억이자 새로운 재경험일 이 걸음을 이제 시작한다.





*여정의 길 위로 함께 들어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5편, 재완주 제주 올레길월/수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