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C의 마무리, 스카버러
아구구. 몸이 말이 아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이곳저곳이 쑤셨다. 몸살 기운 비슷하게, 상태가 멍하고 무거웠다. 다섯 시 반에 절로 깨어났지만 억지로 억지로 더 잤다. 자려니까 또 자지더라. 10신가 11신가 겨우 정신을 좀 차렸다. 주말을 맞은 한국과 긴 통화도 했다. 슬슬 배가 고파 나갈 준비를 했다. 세수도 건성건성 옷도 대충대충, 느릿느릿-미적미적. 그게 길을 끝낸 스카버러에서의 알량한 내 미덕이었다.
바깥은 추웠다. 안개도 여전했다. 도대체 왜 반바지를 입고 나왔을까. 쌀쌀했지만, 귀찮아서 숙소로 돌아가진 않았다. 보이는 대로 근처 카페로 들어가 늦은 식사를 해결했다. 스카버러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깔끔해 보이지만 허름했고, 친절한 듯 무심했다. 캐시 온리. 남은 영국 동전들을 다 털어냈다. 싸고 맛이 좋았다. 잉글리시 풀 블랙퍼스트가 이제 익숙해졌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걸 또 시켰다.
앞으로 산티아고순례길을 가기 전까지 며칠 동안은 식당부터 메뉴까지 고민을 해야 했다. 걸을 때가 좋긴 했네. 루틴처럼 돌아가니 식사는 거의 자동처럼 따라왔었다. 선택권이 줄어들수록 편한 게 밥이었다. 큰일이다. 걷기보다 품이 많이 드는 관광이 당분간 예정되어 있었다. 리즈(Leeds)를 거쳐 파리(Paris)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식사를 마치고선, 동네 마실하듯 골목을 내키는 대로 걸었다. 총총 건물들이 조밀하게도 이어져 있었다. 스카버러는 규모가 꽤 큰 도시였다. 복잡한 집들과 많은 차들, 상점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적막했다. 바다의 절벽도, 어느 교회의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거리가 온통 깊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종소리가 길게 울려왔다. 화음이라도 맞추듯 새들은 띄엄띄엄 재잘거렸다.
입장료가 있는 스카버러 성(Scarborough Castle)에도 올라봤다. 안개에 휩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성 주변으로 난 짧은 산책길이 있어 가볍게 걷기에도 좋았다. 여기에서의 해변 조망이 그렇게 좋다는데, 잔뜩 흐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랄까.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엔 이보다 더 어울리는 날씨는 없었다. 덕분에 달뜨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 보이지 않음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더없이 조용했다.
이어폰을 꼈다. 평소 즐겨 듣는 노래는 아니지만, 스카버러에 온 만큼 「Scarborough Fair」를 부러 찾아들었다.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온 영국 민요로, 사이먼&가펑클이 편곡하며 반전의 메시지까지 담은 노래라 할 수 있겠다. 안개 낀 스카버러의 풍경과도 썩 잘 어울렸다. 허공을 스치는 듯한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절벽 아래 숨죽인 물결처럼 잔잔히 흔들렸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앤 타임…’ 부유하듯 낙낙한 바람이 불어왔다. 흐릿한 장면은 어쩐지 그 불가능한 서사와도 맞닿은 듯 느껴졌다. 바다는 잿빛으로 잠들었고, 하늘은 납빛 아래 잠겼다. 무언가 시작될 듯 그러나 이미 끝을 품었다.
성에서 나와 해변까지 내려갔다. 잔뜩 추워 이왕이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나았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소란, 이내 북적이는 인파를 마주하곤 살짝 당황을 했다. 좀 전까지의 고요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 조잡한 거리의 가게들, 온통 피쉬앤칩스에 유치한 놀이 기구들. 정체가 빚어진 도로는 복잡했다. 해변에는 어지러운 발자국이 수도 없이 찍혀 있었다. 확실히 이곳은 관광지임이 분명했다. 거기서 거기인 먹거리들과 그저 그런 기념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즐거워 보였다. 이래 봬도 사실은 나도 꽤 즐거웠다. 아무래도 그럴만한 심적인 여유가 있었다.
CTC를 마친 도보여행자들은 보통 로빈후즈베이로부터 10km 북쪽에 위치한 휘트비(Whitby)나 남쪽으로 25km 떨어진 스카버러로 가곤 한다. 둘 다 영국 내 유명한 휴양도시다.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휘트비는 소박한 어촌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스카버러는 규모가 큰 리조트 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 「Scarborough Fair」로 익숙하기도 하지만, 더 고요할 휘트비를 마다하고 스카버러를 선택한 데에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교통과 숙박이었다. 자는데 더 쌌고, 이동하는 게 더 편리했다. 소설 드라큘라의 영감이 된 휘트비 수도원(Whitby Abbey)을 포기하고, 절벽의 고대 요새 스카러버 성을 선택한 셈이 됐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번잡함 속으로 끼어들 수 있었다. 고요했던 길과 떠들썩할 관광 사이의 완충 역할로 아주 적절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해변에서 길을 올라 쇼핑 거리를 구경했다. 딱히 볼 건 없었지만, 시간을 때우듯 구석구석 살펴봤다. 좀 걸었다고 벌써부터 배가 고팠다. 마침 적당한 가게가 보여 햄버거로 이른 저녁도 해결했다. 골목골목을 통과하며 천천히 숙소로 돌아왔다. 그 길의 이름마저 무어랜드 로드(Moorland Road)라서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울 듯, 무어(moor).
쉬다 씻고 놀다 말며, 그냥 그렇게 남은 시간을 보냈다. 한가로움이 이를 때 없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녹진한 몸이 그대로 침대 아래 깊숙이 파고들 것 같았다. 나른한 늦오후의 시간이 나릿나릿 흘렀다. 이따금 창 밖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잠이라도 들었까. 기억은 드문드문했다. 깊은 상념에 잠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잊혔던 생각에 꿈같은 잔상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문득 정말 CTC를 완주하긴 한 걸까 싶었다. 하루 사이 기억은 이미 한참이나 멀리 도망가버린 것 같았다. 길다면 긴 그 17일간의 도보여행길이 그새 그저 아주 납작한 사실이 되어있었다. '다 걸었다.' 그 한마디면 모든 게 설명이 됐다. 실체는 빈 손처럼 매만져지지 않았다. 어깨와 허리, 다리에 남은 통증만이 그 사실을 실재로서 증명해 줄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이마저도 곧 사라질 게 분명했다. 영광은 찰나, 상처마저 완전히 아물고 나면 그 흔적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일종의 허무감이 뒤따랐다. 결국 그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과정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날마다 꾸역꾸역 이어온 이 사진들과 글 그리고 매일의 로고가 남았다. 얄팍한 내 기억을 보듬는 일종의 증언이 된다.
동시에 후련함도 있다. 고난 없는 이 휴식의 하루가 모처럼 참 달콤하긴 했다. 내일은 리즈로 간다. 그래, 리즈 시절의 그 리즈가 맞다. 산티아고순례길을 가기 위한 교두보로 리즈와 파리를 선택했다. 아직 아무런 정보를 찾지 못했다. 역시 가보면 알게 될 거라 생각을 한다. 치익-
아, 오늘도 역시 맥주가 달다. 걷지 않아도 이 맛은 알지.
치얼스.
허공에 대고 마무리 건배를 했다.
2024.09.21.
CTC의 마무리, 스카버러
10,545보(6.8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비수기 2편-영국 CTC」는 평일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 부록을 포함해 2화 남았습니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