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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생장까지 그 조용한 들뜸

프랑스길의 시작점, 생장피에드포르

by 달여리

잠시 정차한 휴게소의 바깥바람은 놀랄 만큼 차가웠다. 일어선 김에 최대한 몸을 풀어줬다. 기지개를 확, 하품을 쩍. 멀건 입김이 힘없는 영혼처럼 빠져나갔다.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삐걱거렸다.


파리의 밤을 실은 버스는 보르도(Bordeaux)를 거쳐 바욘(Bayonne)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있자니 뜬금없이 왼쪽 무릎이 많이 아파왔다. 위클로웨이 막바지에 문제가 생겼던 무릎이다. 손으로 마사지를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도착하기도 전에 다가올 긴 걸음이 걱정됐다. 기절하듯 자다가도 통증에 깨어나길 반복했다.

<긴 밤의 버스는 바욘의 아침으로 닿는다>

비몽사몽의 물결 속에 붉은 어스름이 서서히 올라 틔였다. 슬슬 잠에서 깨어날 때였다. 이 버스의 종착지는 바욘이 아니라 빌바오(Bilbo)였기에, 혹여라도 바욘의 정차를 놓쳐서는 안 됐다. 아침 일곱 시가 넘어서부터는 정신을 아주 바짝 차리고 있었다. 버스는 예정된 8시 20분에 정확히 바욘에 도착했다. 파리에서부터 장장 10시간을 달려왔다. 장거리 버스에는 이골이 난 줄 알았는데, 아니 아주 진저리가 처졌다. 몇 명이 함께 내렸다. 개중엔 큰 배낭을 멘 분도 두엇 계셨다. 아마 그들 역시 순례길로 향할 모양이었다.


파리에서부터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 이하 생장)까지 가려면 바욘을 필히 거쳐 가야 한다.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마찬가지다. 돈은 적고 시간이 많은 나는 야간 버스를 택했다. 문제는 체력인데, 이 여파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여기서 하루에 4~5회 운행하는 생장행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 예약해 둔 11시 20분 기차까지는 아직 세 시간 남짓의 여유가 있었다. 딱히 뭘 하겠단 계획은 없었다. 무릎도 시험해 볼 겸 그저 바욘을 아무렇게나 좀 돌아다녀볼까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음장같이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순간 소름이 쫙, 전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서둘러 잠바를 꺼내 껴입었다. 반바지는 당장 어쩔 수가 없어, 무릎보호대로 맨다리를 조금이나마 감쌌다. 버프를 목에 두르고 후드를 깊숙이 덮어썼다. 서서히 떨림이 멈추긴 멈춘다. 여전히 추웠지만 이만하면 참을 만은 했다. 조금 진정이 되자 그제야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려다본 하늘이 파랗고 깨끗했다. 비스듬히 내린 아침 햇살은 눈부시도록 청명했다. 노랗고 환했다. 거리는 온통 조용하고 한적했다. 말동무 없는 입김이 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피곤토록 오래 앉아왔던 터라, 걸으니 개운했다. 차갑도록 정신 또한 맑았다.

<청명한 바욘>

바욘을 가로지르는 아두흐(Adour) 강은 요동치며 흘렀다. 피곤을 무릅쓴 내 맘도 느닷없이 요동치듯 쿵쾅거렸다. 순례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실감이었다. 설렘이었을까. 순례길에 대한 어떤 환상이나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랬다. 책이나 영상으로 너무나 익히 봐와서였을까. 실제로 내 인생에 있을 거라 전혀 생각지 못한 지금의 순간이었다. 마치 소설 속에 들어온 것처럼, 묘하도록 비현실적인 감각이었다. 피식, 쉰소리 내어 웃었다. 아, 어쩌면 추위로 인한 떨림이 채 가시지 않아 두근거림으로 남은 건지도 몰랐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들이 눈에 띄었다. 고요히 가라앉은 공기가 냉동실처럼 신선했다. 완연히 떠오른 햇빛 위로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 탑에 이끌리듯 다리를 건너갔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순례길의 시작을 성당에서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종소리가 들려온 바욘 생트 마리 대성당(Cathédrale Sainte-Marie de Bayonne)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어디서든 잘 보여, 찾아가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천천히 골목을 구경하듯 걸어 들어선 성당, 이제 막 아홉 시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얼떨결에 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여했다.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태양이 성스럽게 비쳐 들어왔다. 눈이 부셔 질끈 감은 어둠엔 두서없는 상념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였다. 일어날 때 일어나고 앉을 때 또 함께 앉았다. 무언가 빌거나 바라진 않았다. 대신 "산티아고순례길을 잘 걸어보겠습니다."하고 속으로 신고식 같은 인사를 드렸다. 미사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다. 동전으로 헌금도 했다. 끝나갈 즈음엔 멋모르고 줄을 따라 섰다가 동그란 과자 같은 것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라고 한다. 성체를 받는 행위인 '영성체'를 통해 예수와 하나가 되는 아주 신성한 의식이었다. 세례 받은 신자만 받을 수 있다고 해, 큰 결례를 한 건 아닌지 덜컥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도 나름의 세례명이 있었다. 군대 때 초코파이를 준다 해서 받았었던 베네딕트(Benedict)라는 세례명이었다. 그 이름처럼 바욘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 됐다. 감사하게도 순례길의 시작부터 그 신성한 기운을 몸에 품게 되었다. 하여 지금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멘.

<바욘 생트 마리 대성당>

프랑스길(Camino Francés)은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 순례길로, 프랑스 남부 생장에서부터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까지 이르는 약 800km의 긴 여정이다. 순례길의 기원은 9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의 끝자락 갈라시아 지방에서 예수의 제자인 사도 성 야고보(Santiago, St. James, St. Jacques)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전승에서 비롯됐다. 당시는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의 침입으로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런 만큼 이 발견은 기독교의 신앙적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에 성 야고보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10세기 무렵부터 유럽 전역의 신자들이 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이후 12세기 교황 칼릭스투스 2세가 성 야고보서(Codex Calixtinus)를 통해 공식적인 순례 지침을 제시하며 순례길이 체계화되었다. 그 가운데 프랑스 전역에서 출발하는 여러 루트가 피레네산맥의 관문인 생장으로 모여 스페인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로 발전한 것이 바로 산티아고순례길의 프랑스길이다.


중세 시대의 순례는 단순히 신앙을 표현하는 행위를 넘어 유럽 대륙의 문화·예술·경제적 교류를 잇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순례자들을 위해 수도원과 병원, 다리, 마을이 세워졌고, 그 길을 따라 로마네스크 건축과 성상미술, 언어와 음악, 교역의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적 신념뿐 아니라, 삶의 전환점에 선 사람들이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길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랑스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대략 매년 20만 명 이상이 이 길을 완주하고 있다. 천 년의 발자취 위로 같고도 다른 새 발걸음들이 끊임없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긴 역사의 일원이 된다. 성찰보다는 '걷기' 그 자체에 집중하겠지만. 다시 한번 아멘.

<문 닫은 어느 가게>

절로 자세는 공손해졌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잠시 둘러본 뒤,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골목을 에둘러 동네를 구경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지역 내 어느 대회라도 있는 건지, 번호표를 달고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도 문 연 빵집이 있어 다행이었다. 따끈따끈한 크루아상을 늦은 아침으로 사 먹었다. 와... 배고파서가 아니라 진짜 진짜 맛있었다.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결정체. 바삭바삭, 입 안에선 사르르 녹았다. 진열장에도 남은 빵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굳이 갓 구워진 걸로 담아주셨다. 다리를 건너 기차역으로 가는 길, 크루아상 가루를 거리에 흩날리며 허겁지겁 잘도 먹었다. 세 개 살걸. 두 개로는 한참 아쉬웠다. 그렇다고 돌아가긴 또 귀찮았다.


역에는 딱 봐도 순례길을 떠나는 행색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기차는 의외로 한산했다. 1시간 남짓을 달려 12시 20분 드디어 생장에 도착했다. 그래, 말로만 듣던 그 생장엘 왔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구글 지도 경로를 찾아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등산 배낭을 멘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공동의 길을 목적으로 한 이 북적이는 소란. 그건 위클로웨이와 CTC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이곳이 트레킹의 성지 중 하나라는 게 걷는 걸음걸음마다 확인이 됐다.


사진으로만 봤던 골목을 올라, 말로만 듣던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1시 반 오픈으로 알고 있었는데 입구에는 2시 오픈이라 적혀있었다. 어차피 예약해 둔 숙소도 3시 체크인이라 시간이 여유로웠다. 딱히 할 것도 없었다. 사무실 앞에 배낭을 던져둔 채 골목에 앉아 그저 시간을 기다렸다. 고양이가 유유히 지나갔고, 관광객들이 골목을 오고 갔다. 조용하면서도 거리엔 어쩐지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잘 흘러갔다. 2시 정각에 열린 문, 거의 제일 처음으로 입장을 했다. 순례자 여권인 Credencial을 발급받고, 길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가방에 달 가리비를 골라 적당한 기부금도 냈다.


이제 진짜 걷나 보다. 내일부터 산티아고순례길이 시작된다.

<생장의 분위기>

그래도 아직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의 Bar에서 맥주 한 잔 짧게 마셨다. 재깍 맞춰 들어간 숙소는 매우 깔끔했다. 샤워를 했고, 빨래는 속옷만 했다. 이미 몇 차례씩 꿰맸지만, 뒤꿈치의 구멍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양말 한 짝은 어쩔 수 없이 버렸다. 내일은 아주 긴 거리, 더군다나 '악명 높은' 피레네산맥을 넘는 날이다. 위클로웨이와 CTC에서는 못 누려본 호사, 배낭을 다음 숙소로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도 미리 신청해 뒀다. 길이 어떨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첫날부터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는 이 무릎이 언제 또 말썽을 일으킬지도 알 수 없었다.


하필 일요일이라 인근의 마트는 모두 문을 닫았다. 장을 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 그냥 거리를 헤맸다. 골목을 구경하다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기념품 가게에서 관광상품 같은 (비싼) 쿠키를 간식용으로 샀다.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으로 버거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길에 대한 의지를 다지듯, 아주 꼭꼭 씹어 목을 넘겼다. 어느새 날은 저녁으로 다다른다. 사위가 금방 컴컴해졌다. 내일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밤 사이를 낀 긴 이동이 무척 피곤했다. 내일 새로운 걸음이 시작도 되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자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길이 이어질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그만큼 정보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탓이지만, 몰라서 오히려 더 호기심이 일었다. 한 달이 넘도록 내내 걷기만 하는 게 도대체 어떤 걸까. 짐짓 모르는 척 기대를 하며, 또 긴장을 품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날씨마저 좋단다. 살짝 웃었던가, 기별도 없이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2024.09.29.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0일차

이동 to 생장

오늘 하루 12,647보(9.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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