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1일 차
생장피에드포르~부르게테(≈27.76km)
부스럭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니 여섯 시 조금 전이었다. 고요한 소란. 새벽의 도미토리는 이미 부산한 준비 중이었다. 눈을 감고 좀 더 누워있었다. 긴 이동의 여파가 남아 아직 몸이 무거웠다. 아홉 시간쯤을 내리 잤다. 한 번도 깨지 않은 검은 꿈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침낭부터 갰다. 세수를 하고 빨래를 걷어왔다.
가방을 다 챙기고선 슬슬 주방으로 내려가려는데, 이미 채비를 마친 대만 여성 순례자분께서 같이 출발해 줄 수 없는지 물어오셨다. 너무 컴컴하니 혼자 걷기 위험하다는 거였다. 대충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려고 했는데, 덕분에 얼떨결에 출발을 하게 됐다. 그래도 배낭 이동 서비스를 위한 동키 돈 봉투(8유로)는 잊지 않고 배낭에 잘 달아 두고 나왔다. 여기에 브라질 여성 순례자 한 분까지 합류해 길의 시작을 셋이서 함께 하게 됐다. 어색했지만, 꼭 필요한 것들만 담은 보조가방을 멘 터라 차림만은 모처럼 가벼웠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프랑스길의 첫 구간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힘들기로 원체 악명이 높다. 실제로는 중후반부에 지날 몬테 이라고(Monte Irago)의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 구간이 1,504m로 더 높지만, 길의 험준함과 극초반의 몸 상태 등으로 인해 더욱 극한의 난이도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피레네 고갯길인 레푀데르 언덕(Col de Lepoeder)은 높이가 1,450m쯤 된다. 시작부터 정상까지 쉼 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고 하니 괴롭도록 힘들만하다. 순례길의 등용문이자, 800km에 이르는 긴 걸음에 앞선 일종의 신고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길은 19세 초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 때 활용한 길이라고 해서 '나폴레옹 루트(Route Napoléon)'라고도 불린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 길로 넘는다. 무엇보다 예측불가능한 기후로 유명하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더없이 멋진 풍경은 덤이다.
높은 길이 힘들다면 대체 루트가 있기는 하다. 이름하야 발카를로스 루트(Valcarlos Route).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 구간을 걸어야 하지만 대신 고산지대를 피할 수 있다. 정상을 지나는 나폴레옹 루트는 기상 상황에 따라 닫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특히 눈이 쌓이는 10월부터 4월까지는 긴 기간 폐쇄되기도 한다.
6시 40분 길을 나섰다. 가로등이 있어 숙소 앞 골목은 밝았다. 하지만 짧았다. 곧 길은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올려다본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가녀린 그믐달이 언덕 너머로 걸쳐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검은 길 위로 서성였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어지러이, 새벽답지 않게 어둠은 수선스러웠다. 헤드랜턴을 꺼내 길을 밝혔다. 앞과 뒤로, 걷는 이들이 듬성듬성 꽤 보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함께 걷는 길이었다. 이미 곁에 낯선 이들이 시작부터 있었다.
처음부터 오르막이었다. 해발 1,400m에 이를 정상까지는 앞으로 내내 오르막일 예정이었다.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동그란 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입김처럼 숨이 피어올랐다. 드문드문 동행자 두 분과도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대만분께서는 한국 예능에 대해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셨다. 순례길을 걷는 예능을 보고 여길 오게 되었단다. 하우어바웃유. 아쉽게도 브라질분께서는 영어를 전혀 못하셨다.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연명하다, 겨우 배운 거라곤 '오브리가도'라는 포르투갈어 감사 인사 정도였다.(후에 포르투갈 해안길에서 정말 많이 사용하게 된다.) 손짓 발짓 소통의 삐걱임에도 그 자체로 웃음이 됐다. 아마 이 대화들은 서로 다르게 기억할 듯 하지만, 첫 시작의 얼굴들인 만큼 쉬이 잊지는 못할 것이었다.
7시 반이 넘자 서서히 길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이 푸르고 붉었다. 별과 여명, 푸른 들판과 한없는 오르막. 저 멀리 산맥은 요동쳤다. 뒤따라오는 발걸음은 바빴고, 숨은 점점 더 가빴다.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다는 실감은 곳곳에 여지없이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갔다. 브라질분께서 유독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셋이 보조를 잘 맞췄다. 낙담하지 않도록 응원도 적절히 섞었다.
온 세상이 완전히 밝아진 후, 9시 무렵 그들과 헤어졌다. 처음 같이 걷게 된 이유였던 '컴컴해서 위험하다'는 조건이 사라졌다는 판단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도 컸다. 죄송하지만 페이스대로 걷고 싶다 두 분께 말씀드렸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몇 번씩 뒤돌아 보다, 이내 걸음을 서둘렀다. 몇 번의 굽이를 지나자 더 이상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딩딩딩. 소 목줄에 달린 종소리가 은은한 고통처럼 들려왔다. 양 떼, 고사리, 햇빛과 언덕. 순례길에 대해 그리 많이 알아보고 온 것도 아닌데, 마치 교과서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을 걷는 듯 익숙했다. 무거운 배낭을 동키 서비스에 맡겼더니 발걸음 또한 더없이 가벼웠다. 생각보다 오르막이 힘들지 않았다. 위클로웨이와 CTC를 거치며 꽤 단련이 된 게 분명했다.
9시 10분. 산 중의 산장, 오리손(Orisson)을 지난다. 여태 8km 가까이를 온 거다. 힘든 피레네 구간을 나눠 걷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서 묵기도 한다. 보통은 첫날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이곳까지 한 번에 온다고들 했다. 예약이 치열해 자리를 얻기가 쉽지가 않단다. 근처에 있는 알베르게 보르다(Albergue Borda)도 마찬가지다. 굳이 숙박까지 하지 않더라도 많은 순레자들이 여기서 아침을 해결한다. 지나치며 잠시 고민했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생장표 (비싼) 쿠키면 아점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10시 50분엔 처음이자 마지막인 푸드트럭도 지났다. 에이, 그래 잘됐다. 여기서 바나나 두 개와 삶은 계란 두 개, 콜라 하나를 통 크게 사 먹었다. 쿠키대신 아점을 건강히도 채웠다. 띠롱! 스페인으로 들어왔다는 알림 문자가 왔다. 이름은 '프랑스길'인 주제에 프랑스는 겨우 잠시, 여기서부터 벌써 스페인 영토였다. ‘봉주르’가 아니라 ‘올라’가 됐다.
오르막은 얼마 동안 계속됐다. 햇살이 따스해 슬슬 따갑기까지 했다. 변덕스럽다는 날씨는 온데간데없었다. 한없이 맑은 하늘이 그러니 반가웠다. 땀이 샘솟아도 차라리 이게 나았다. 유려한 산등성이 먼 풍경은 주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흘러내렸다.
양들이 많았다. 오를수록 말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소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르니 좋았다. 풍경이 그랬다. 여기도 헤더꽃이 만발이다. 작은 도마뱀들이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렸다. 햇빛의 반대면은 모두 눈부시게 빛났다. 짙도록 명암이 깊이 내려 있었다. 아주 명확토록 사리분멸이 또렷했다.
예수를 품은 성모 마리아상 비아꼬리(Biakorri)를 지난다. 오르막이 얕아지며 서서히 능선으로 변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 콸콸콸 보기만 해도 시원한 샘터가 나왔다. 롤랑의 샘(Fonte de Roland)이라 불리는 곳이다. 전설의 기사 롤랑이 목을 축였다는 장소다. 무엇보다 이 길을 넘는 자들을 위한 단비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이미 거의 다 비운 물통도 덕분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12시 반 즈음, 드디어 오르막이 다 끝났다. 작은 조형물이 세워진 레푀데르 언덕(Col de Lepoeder) 정상이다. 모든 산들이 죄다 눈높이보다 아래에 있었다. 겨우 점심 무렵이라 얼마 안 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벌써 여섯 시간 가까이 올라온 거였다. 힘들 만도 한데, 아직까지 체력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어느덧 내리막이다. 깊은 숲처럼 길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숙소를 예약한 한국 분을 만났다. 거기서부터 숙소까지 내내 같이 길을 걸었다. 통성명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다. 2시가 다 되어서야, 피레네 고개를 넘은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 도착했다. 마을이 생각보다 작아 기대와는 달랐다. 대다수가 이곳의 공립 알베르게에 묵는다. 하지만 동키 서비스를 위해 다음 마을 사립 알베르게로 이미 예약을 해두었다. 조금 더 걸어 부르게테(Burguete) 마을까지 가야 했다. 3km 남짓만 더 가면 된다.
도로를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미리 장 보려고 했는데, 마을 초입의 슈퍼는 브레이크 타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4시 반에 다시 연단다. 일단 남은 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2시 40분께 도착했다. 오늘의 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어렵다던 피레네산맥이 의외로 수월했다. 몸도 무리 없이 멀쩡했다. 그래도 꽤 긴 거리를 걸었다. 첫 고비를 무사히 넘어 우선은 다행이었다.(동키 서비스에게 그 영광을 돌린다.)
3시 오픈을 기다려 재깍 체크인을 했다. 서비스를 맡긴 배낭은 별 탈 없이 도착해 있었다. 방을 배정받은 뒤 얼른 샤워와 빨래부터 했다. 진한 햇살 덕에 빨래는 금방 마를 것이었다. 4시 반, 함께 걸어왔던 한국분과 슈퍼 오픈 시간에 딱 맞춰 장까지 봐왔다. 지글지글, 푸짐한 저녁을 요리해 맥주를 나눠 마셨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곧잘 보냈다. 하루가 기울자 슬금슬금 저녁이 다가온다. 순례길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갔다.
산티아고 순례길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아직은 낯설었다. 이 많은 사람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거대한 무리의 일원이 된 듯한 감각은 상당히 거북스럽기도 했다. 아침의 대만분과 비슷하게, 여기 이 한국분도 예능을 보고 순례길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고 했다. 각자의 길은 또 따로 있겠지. 서로 나누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혼자만의 생각에 자주 잠겼다. 음... 나는 여기 왜 왔더라.
아! '그냥'이었지.
어느새 밤이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빨래도 바짝 다 말랐다. 내일을 기약하고 서로는 헤어졌다. 각자 걷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들어선 방엔 국적이 다른 세 분이 계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배낭부터 미리 챙겨뒀다. 누워서 이런저런 할 일을 하는데 다들 곤한지 일찌감치 불을 끈다. 에잇, 눈치껏 하던 일도 바로 접었다. 로비로 나갈까 하다 '그냥' 덩달아 눈을 붙였다. 알게 모르게 피곤했었나 보다. 가타부다 곧바로 잠에 빠져들도 말았다.
2024.09.30.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1일 차(누적거리 27.76km)
오늘 하루 49,087보(33.4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a」는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