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프랑스길과 포르투갈길 그 사이
문득 걷고 싶어 떠난 4개월간의 여행, 지금껏 3개의 트레일을 걸었다. 7일간 127km 아일랜드 위클로웨이(Wicklow Way)를 걸었고, 17일간 315km 영국 CTC(Coast to Cosat Walk)를 걸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진 산티아고순례길 프랑스길(Camino Francés) 773km를 35일 동안, 거기서부터 세상의 끝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그 연장길(The Finisterre and Muxía Way) 116km를 5일간 더 걸었다. 그러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 여행은 어느덧 한 달 반 남짓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떠난 것은 아니었기에 이쯤이면 충분히 걸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하지만 어쩌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코끼리는 더 선명히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머릿속에 붙들어둔 포르투갈해안길이 불쑥 떠오르고 만 건 그러니 결코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4번째 트레일 산티아고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Camino Portugués de la Costa)로 떠나게 됐다.
"조금만 더 걸어가보자."
그전에 몸부터 추슬러야 했다. 지친 정신의 환기도 필요했다. 산티아고로부터 넘어간 포르투는, 그런 의미에서 거의 완벽했다. 기대처럼 아름다웠고, 고민 없이 농도가 짙었다. 호화로운 식사도 홀로 즐기고, 시장과 성당, 골목과 전망대, 동루이스다리와 모로정원을 오가며 도우루강변 산책도 마음껏 누렸다. 밤마다 거리마다 이어진 버스킹과 굳이 예약까지 해 관람했던 파두 공연. 해리포터다운 렐루서점에서 산 두 권의 책은 의외로 가벼웠고, 한참을 더 걸어 나가 만난 마토지뉴스 해변의 그 축축했던 공기는 후련토록 시원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그사이 걸을 준비는 절로 다됐다.
그토록 징글맞게 걷고도 더 걷기로 했다니, 사실 스스로도 참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찌됐건 포르투갈해안길이 이번 여정에서의 마지막 긴 걸음이 됐다. 어차피 결정했고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그저 남다른 각오와 익숙한 의지를 다지며, 다가올 미지의 길을 담담히 맞이할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기대가 됐다. 설렘이 없었다면 그건 분명 거짓일 터였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257km다. 앞으로 열하루를 더 걸어가게 된다. 여태 한참을 걸어왔음에도 마치 처음 길 위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무엇을 보게 될지, 무엇이 남게 될지는 역시 아직 알 수는 없다. 겨우 딱 한 걸음씩이면 된다. 앞으로 난 방향은 알든 모르든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법이다.
한 번의 마침표를 찍고 써 내려가는 문장들,
그 연속된 걸음의 기록이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요이땅. 이제 출-발.
*여정의 길 위로 함께 들어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4편, 산티아고순례길-포르투갈길」은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