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의 1막을 마무리하며
B와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함께 하기로 한 페티예의 마지막 날이자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가는 날.
아침 일찍 픽업버스를 타고 투어 오피스로 이동해 간단한 안전수칙을 들은 다음, 준비된 차량을 타고 지정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차량을 타기 전까지는 곧 있을 액티비티가 무섭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든 게 다 지나가고 난 뒤 이 여행기를 쓰는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보다 비포장 도로의 산길을 시속 70~80km/h로 올라가는 밴이 훨씬 무서웠다... 안전 펜스도 따로 없는 1차선 산길을 어쩜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건가?라는 생각도 들만큼 이런 길에서도 이 정도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액티비티 규정상 개인 핸드폰을 가지고 올라갈 수 없어 그 기록을 남기진 못했지만, 차량에서 바로 옆 창밖으로 보이는 낭떠러지는 나뿐만 아니라 같은 차량에 탑승한 모두를 겁에 질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 덕분이라고 하기엔 우습지만 되려 패러글라이딩은 긴장감을 덜어낸 채로 즐길 수 있었다. 모든 건 함께 뛰는 가이드분이 해주시기에 점프 스팟에서 한두 걸음도 못 걸어가다가 대롱대롱 걸린 채로 날아버렸는데, 처음 올라갈 땐 안개가 조금 껴있는 듯하더니 얼마 안 가 맑은 하늘을 마주하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페티예의 패러글라이딩이 유명한 이유가 해발 2000m에서 이뤄지기 때문인데 그만큼 엄청난 장관이었고, 여행에서 겪고 있는 대부분의 경험들이 그렇듯 막상 해보니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될 체험이었다.
일정상 액티비티가 끝나고 난 후 이스탄불로 이동하기 위해 바로 공항버스를 타러 가야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던 터라 B와는 빠르게 작별인사를 한 뒤 숙소에 복귀해 바로 짐 싸서 체크아웃하고 터미널로 죽어라 달려 공항버스가 출발하기 1분 전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더운데 땀도 삐질삐질 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택시비 아껴서 다행이야.
짧게 머물렀지만 혼자 생각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 마음에 남을 도시 페티예. 언젠가 또 보자!
비행기가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이스탄불까지 무사히 넘어왔다. 다만 여기서부터 이번 여행에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악운이 시작됐는데, 분명 미리 예약하고 방문한 숙소는 느닷없이 풀 부킹이라며 그 자리에서 예약 취소당하고, 급하게 앱을 이용해 근처 다른 숙소를 아무 데나 잡아서 바로 간 곳은 도착해 보니 빈민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동네의 분위기에 동양인인 나를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숙소는 외관상 깨끗하니까 별 탈 없겠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문제가 있었다. 체크인을 마친 후 간단히 먹을 식료품을 사러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니 벽 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지길래 쳐다보았는데 바퀴벌레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붙어있더라. 물리진 않았지만 전 날 페티예에서도 배드버그에 시달리고 왔던 만큼 보자마자 스트레스가 확 올랐다.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는 만큼 긴장과 피로가 늘 섞여있는 터라 적어도 숙소만큼은 푹 쉴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최소한의 쉴 곳도 잃은 상태였다. 일단 방 바꿔달라고 요청해서 변경하긴 했지만 이미 숙소 위치자체가 문제인터라 의미가 있나 싶긴 했는데, 역시나 바꾼 방 화장실에서도 바퀴벌레가 또 나왔다. 심지어 그 방은 창문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고, 주방 물도 안 나오는, 최악의 최악이었다.
차라리 숙소를 옮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환불을 요구했지만 내 예상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각종 변명을 들어가며 절대 환불해주려 하지 않았고, 적지 않은 여행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다행히 이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제일 최선의 방법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포기하는 것이다. 숙소를 예약한 앱을 통해서 신고를 넣고 처리한다 한들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받을 것을 알고 있었고, 튀르키예의 특성상 대부분의 숙소가 앱을 통해서 예약만 받은 다음 숙소에 직접 도착하여 현금지불을 하는 방식이라 괜히 신경 쓰면 신경 쓸수록 골치만 아파지고 그에 비해 해결은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그냥 얼른 환불받기를 포기한 뒤 잊어버리는 게 여행에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간이 늦은 만큼 어쩔 수 없이 숙소는 다음날 옮기기로 했지만, 그 숙소에 조금도 더 있기가 싫어서 거리로 빠져나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스탄불의 마지막이 내게 있어 최악으로만 남지는 않았단 것이다.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어간 펍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와 합석하여 같이 식사 겸 술 한잔 했는데, 얘기하다 보니 여행을 온 목적이라거나 동기, 상황 등이 나랑 너무나 비슷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에는 바로 옆자리에 있던 현지인 친구들도 합석해 서툰 영어를 섞어 다 같이 술잔을 맞대며 오후의 나빴던 일을 어느 정도 떨쳐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늦은 새벽까지 놀다 온 후, 그 최악의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싸고 당장 체크인 할 수 있는 새 숙소로 이동했다. 그곳도 급하게 잡은 곳이라 썩 퀄리티가 좋진 않았지만 적어도 벌레는 없던 데다 위치도 나쁘지 않아서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만족스럽더라. 겨우 편하게 쉴 수 있는 새 숙소를 얻고 난 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 고민을 해야만 했다.
내일의 나는 튀르키예를 벗어나 다른 나라로 떠날 예정이었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었는데, 비록 A는 없지만 그와 함께 계획했었던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루트를 혼자서라도 강행할지, 아니면 처음 여행을 떠나올 때 생각했던 것처럼 바로 옆 나라인 그리스를 갈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더 끌리는 쪽은 이스라엘 쪽 루트긴 하나 아무리 내가 계획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닐 예정이었다곤 해도 중동국가들은 무계획으로 부딪히기에 쉽지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직 튀르키예에서의 하루가 남았기도 하고, 섣불리 선택하기엔 두 곳 모두 장단점이 있기에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미 이스탄불은 A와 모두 관광했던 만큼 외출보다는 숙소 내에서 일하고 푹 쉬며 시간 보내다가, 오후에는 신시가지를 간단히 구경한 후 나의 마지막 이스탄불을 장식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러 이동했다. 오늘의 내 유일한 계획이자 오롯하게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던 곳. A를 처음 만났던 곳이자 내가 이스탄불에 처음 왔던 날 방문한 부둣가 근처였다.
이곳에서 A를 만난 첫날, 내 여행이 이렇게 흘러갈 줄도 몰랐던 데다 당시엔 더 생각도 많고 슬픔도 컸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펼쳐질 줄은 정말 몰랐고, 마찬가지로 조금은 아쉽게 결말을 맺어 나 혼자 이스탄불로 돌아올 줄도 몰랐어. 생각해 보면 A도 지금은 이스탄불에 도착했겠구나.
혼자 왔다가, 같이 떠났다가, 다시 혼자 돌아온 이스탄불. 그래도 첫 시작 때의 내 심정과 지금의 내 심정은 확실히 달랐다. 여행길에서 만났던 A, B, 우연히 펍에서 만나 스쳐간 여행자까지. 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배우고 느낀 점이라면 나는 정말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데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혼자 있으며 느끼는 기쁨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내 여행은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은 이미 조지아에서부터 생각하지 않기로 한만큼 함께하는 이들과 매 순간을 즐기며 행복했다.
저녁에는 페티예에서 헤어진 후 다른 일정을 거쳐 이스탄불로 돌아온 B와 다시 한번 만나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음날 귀국하는 일정이었기에 서로의 여행에 안녕을 바라며 마지막까지 즐거운 마무리를 지었다.
내가 겪은 튀르키예와 조지아의 여행. 물론 마지막 마무리가 약간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게 있어서 즐거움의 연속이었어. 여행이 지속됐던 동안 "나 이 여행이 행복해, 즐거워."라는 말을 몇 번이나 꺼냈을까? 모르긴 몰라도 정말 많이 썼던 것 같아.
이제 또 새로운 여행, 정말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이다. 아직 다음 계획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데다 귀국 일정 역시 전혀 잡혀있지 않은 건 전과 마찬가지지만 오늘을 마무리 함으로써 내 여행의 1부가 막을 내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스라엘과 그리스, 둘 중 어디를 갈지 계속 고민하다가 내린 나의 결정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해당 나라들이 관광 쪽에 컨텐츠가 더 기울어져있는 만큼 또 이곳저곳 둘러보며 바쁘게 보내야 할 듯해서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내 여행은 그 두 나라 중 어떤 곳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3의 선택지가 있는 자유로운 여정이었다. 남들이 즐기는 걸 모두 즐기러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나를 돌아보고 나와의 시간을 더 가지러 온 것이기에 다소 빡빡한 여행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 뒤 새로운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다음 날 가기로 결정한 곳은, 야경이 아주 아름다운 곳. 아주 유명한 관광지라 많은 사람이 찾곤 하지만 의외로 야경 외에는 컨텐츠가 그리 많지 않아 오래 머물만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난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만큼, 아예 일주일정도 머물며 푹 쉬고 밀린 일 좀 하기 위해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바로 예약해 버렸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저녁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그곳에 일주일간 푹 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