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나를 바라보다
평정심에 집착하지 않기
일 년 동안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밭을 돌봤다. 참 긴 시간을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었다. 손을 쓸 수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관심이 필요했다. 작은 밭을 제대로 들여다봤더니, 황량함, 그 자체였다. 크고 작은 돌이 박혀 씨앗 하나 뿌릴 여유조차 없었다. 가림막도 없이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온기마저 빼앗겨 회갈색을 띠었다.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이었다.
돌부터 골라냈다. 땅 고르기도 했다. 영양가 있는 퇴비도 아낌없이 뿌렸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작은 밭은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시 씨앗을 품어 생명을 틔울 수 있겠다는 기대도 하게 만들었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가 자라지 않게 정성을 쏟던 그때, 누군가 큰 돌덩어리를 집어던졌다. 평평하던 땅은 깊게 팼고 땅속에 자리 잡았던 씨앗은 밖으로 튕겨 나왔다. 일 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망가진 땅을 보고 있자니 눈물만 났다. 허망함에 넋이 나갔다. 조금 지나자 화가 났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마음 밭을 헤집어놓은 대상을 향해 분노가 일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숨이 가빠졌다. 주먹만 한 사과가 가슴 한가운데 머무는 느낌이었다. 밥을 먹으면 답답함은 배가 됐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쿵쿵하는 소리가 머리 전체를 울렸다. 일상생활도 어려웠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 식탐이 동하지 않았다. 잠이 몰려왔다. 주말 내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잠들어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만 뜨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깨어있을 때는 마음이 요동쳤다.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리는 걸 보니, 아직 멀었다’며 스스로 야단치다가, ‘그래, 아무리 노력하면 뭐 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데.’ 하고 자포자기했다. 화도 냈다.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의 밭을 가꾸는 데 공을 들였음에도 또다시 흔들리는 나를 몰아세웠다.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냐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고 괜찮다, 지지를 보내기에도 부족한데, 내가 나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지금 나는 너무 억울해!’ ‘도대체 뭐가 잘못됐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지금 나는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어요. 이제는 바깥으로 향해 있는 카메라를 나 쪽으로 휙 돌려봅니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에요.”
<1일 1명상 1평온>의 저자 디아는 세 가지 명상 과제를 내줬다. 타인에게 향한 시선을 나에게 돌리는 연습이었다. 먼저, 나의 하루 다큐멘터리 찍기.
“오늘 하루는 카메라가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 사실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보면 됩니다. 아마도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지내는 사람에게는 하루에 몇 초쯤은 물러나서 보는 시간이 생길 거고요. 나 자신이지만,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거예요. 이는 나에 대한 메타인지를 길러가는 과정입니다. 즉, 조금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지요.”
다음은 나의 디테일 관찰하기.
“이번에 카메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 찍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보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이야기하는 것, 이따금 생각하는 것을 조금 디테일하게, 그러나 여전히 건조하게 담아내면 돼요.”
마지막으로 하루 세 번 명상에 빠지기. 이동할 때, 잠들기 전, 씻으면서 명상하기였다. 저자 디아는 전철 환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을 괴롭히는 온갖 생각에 대입시켰다. 그리고 생각은 이동하는 사람들처럼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음에 꽂혔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 ‘생각은 언제나 복잡하다. 너무 바쁘고 중요한 듯이 움직인다. 그러나 결국 사라진다.’
“이동 중에는 내 생각의 우르르 몰려감, 흩어짐,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생각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고, 흩어지는 승객처럼 제 생각을 떨어뜨려 바라봅니다.”
나의 상태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잔잔하던 마음에 돌을 던져 다시 황폐하게 만든 대상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분노했다. 하지만 이내 상처받은 내가 보였다. 잘잘못을 따지고, 주변의 공감을 얻고, 피해자인 양 움츠러드는 것보다 나를 먼저 안아줘야 했다. 바다에 태풍이 휘몰아쳐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잔잔해지듯이, 잠깐 분노에 사로잡힌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진다고 믿어야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정한 위로였다. 분노하는 나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화가 많이 났구나. 괜찮아. 돌이야 걷어내면 그만이야. 땅을 고르고 씨앗도 다시 심자. 그렇게 정성을 쏟다 보면 어느새 다시 웃을 수 있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