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센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현재에 집중하기

by 김명교

“홍삼 좀 챙겨 먹어!”


친구와 통화하다 보면, 마지막은 꼭 건강을 챙기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늘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가 또 골골거릴까 봐 걱정하는 거다. 해가 지날수록 체력이 약해지는 걸 체감하면서도 건강식품 챙기는 건 소홀하게 된다. 영양제 한 알, 홍삼 한 포 챙겨 먹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 게 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잠.



만삭 때부터 지금까지 잠을 깊이 잔 건 손에 꼽는다. 신생아 때는 아이를 돌보느라 숙면하지 못했고, 지금은 종일 떨어져 있던 아이와 부대끼는 게 좋아서 함께 잠자리에 든다. 피곤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쌔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하루조차 고마워진다. 어쩌다 아이와 함께 잠들어 아침까지 내리 자고 일어난 날에는 확실히 개운하다. 잠이 보약인 걸 보니, 아직은 쌩쌩한가 보다. 아니, 쌩쌩하다고 믿고 싶다.


어느 날 친구는 남편 이야기를 털어놨다. 마흔에 들어서더니, 딴 사람 같다면서. 외모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제 발로 성형외과를 찾아가 간단한 시술을 받질 않나, 감정 기복이 파도를 탄다는 거다. 꼭 사춘기 남학생처럼,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몰라서 어떤 날은 불안하다고 했다. 부부 사이도 한 차례 위기를 겪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이혼이란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고 하더라. 그러다 이런 증상이 전형적인 ‘사십춘기’의 양상이라는 걸 알고 나서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곧 우리에게도 닥칠 일이라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자고 함께 의지를 다졌다.


중년 이후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우울증, 삶에 대한 의미 상실, 신체의 변화 등을 겪는다고 한다. 누구나 때가 되면 겪거나 겪을 수 있는 사십춘기의 ‘흔한’ 증상이라는 거다.


나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이런 사십춘기의 증상을 경험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밀어내고 거부하기보다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면 저항으로 인한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도 안다. 갓난쟁이가 얼마나 무수히 넘어지고 부딪힌 후에야 걸음마에 성공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면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경험자들의 증언도 충분히 알아들었지만,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나는 ‘마흔’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두렵다. 아니, 남들은 사십춘기에 겪는다는 증상을 미리 겪어버려서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하다. 한때 우울감에 갇혔던 기억, 도대체 ‘나’를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썼던 기억에 괴롭다. 역설적으로 지금 내가 느끼는 안정적인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에 취약하다. 평소에도 즉흥적인 걸 즐기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하기까지 꽤 오래 찬찬히 고민하고 확신이 섰을 때 계획을 세워 움직인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쩌다 즉흥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고 나면 불안하다. 가령 갑작스럽게 잡힌 저녁 약속 같은. 내가 없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날 출근하는 모습까지 재빠르게 머릿속에 그리면서 약간의 불안을 경험한다. 20대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쩌다 갑자기 술 약속이 잡히면 잔뜩 기대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니다. 결혼 후 아이를 기르면서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정신과 의사 하주원이 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은 이런 내게 말을 건넨다.


“불안은 잃고 싶지 않은, 더는 고통스럽고 싶지 않은 감정입니다. 잃을 것이 없으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원인이 해결되어도 또 다른 종류의 불안으로 괴롭습니다. 어떤 일만 해결되면 불안이 끝나리라는 그 바람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을 내려놓을 때 어느새 해결됩니다. 불안이 사라지는 순간을 명확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 그러고 보니 어느새 편해졌네? 그게 언제지’하면서 낫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시 생각해봤다. 10대는 학업 문제로 불안했다. 20대에는 취업과 사회생활을 하느라 불안했고, 30대에는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또 한 번 불안했다. 한순간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더 불안한 시기와 덜 불안한 시기’만 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또 한 번’ 불안을 직면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마흔을 앞두고 초록색을 유지하던 불안 센서에 빨간불이 켜졌다. 나의 일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걸 미리 감지하고 일종의 방어태세가 작동한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불안해하지만 말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방법 중에 ‘명상’부터 시작해봤다. 종종 멍하게 앉아있다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어렸을 때 발성을 배우면서 익혔던 복식호흡을 떠올리면서 숨이 드나드는 찰나에 집중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걱정이나 두려움, 불안감의 크기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직은 명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감이 오지는 않는다. 계속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명상은 불안과 걱정을 다루기 위한 훌륭한 방법입니다. 현재와 내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 마음챙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명상 또는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요한 풍경 속에서 눈을 감고 꼿꼿이 앉아 복식호흡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명상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나 미래, 주변에 대한 자극을 줄여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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