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나는 아이가 짠하지 않다

by 김명교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향하던 주변의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일하러 가면 어쩌니.’ ‘엄마 보고 싶어서 어째.’ ‘어린데, 종일 어린이집에서 지낸다고? 힘들어서 어쩌누.’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데….’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아이가 안타까운 마음에 건넨 말이란 건 안다. 걱정스럽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 말들 속에는 ‘아이가 짠하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불쌍하다는 거다. 일하는 엄마를 둔 내 아이가 그들은 불쌍해 보였던 거다. 그래서 불편했다. 위로인 듯 아닌 듯한 이 말들이.


복직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이를 떼어놓고 회사에 복귀하는 게 맞는 건지, 잘한 선택인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특히 ‘아이가 세 살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 좋다’는 ‘3세 신화’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가 정립한 ‘애착 이론’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3세 신화’는 이 애착 이론을 왜곡한 결과물이라는 것도. 그는 엄마가 회사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아이를 3년 동안 돌봐야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없었다. 일하는 엄마의 자녀가 또래보다 뒤처지거나 문제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볼비의 애착 이론은 영유아기 때 주 양육자가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보살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who)’ 키우느냐가 아닌, ‘어떻게(how)’ 키우느냐다. 주 양육자는 엄마일 수도, 아빠일 수도, 아니면 조부모일 수도 있다. 대신 아이에게 주 양육자로부터 신체적으로 보호받고, 정서적으로 지지받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이런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애착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 단상에 올라 덤덤하게 수상 소감을 전했던 그녀다. 전 세계 언론은 물론 나도 재치 있는 입담에 푹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아,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면서 위로받았다.


제가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 준 두 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I’d like to thank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 hard. Beloved sons.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


그녀의 수상 소감을 듣고, 새근거리며 자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미안함에 눈물 흘렸던, 수많은 밤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3세 신화에 빠져들었던 건지 반성했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에 매몰돼 복직을 앞두고 눈물 훔치던 또 다른 내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조바심이 생겼다. 일하는 엄마들이 회사에 나가면서 내 새끼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원흉(?)을 바로잡고 싶다. 아니, 예비 부모, 초보 부모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3세 신화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고 싶다. 이걸 만들어낸 누군가가 있다면, 이게 뭐라고 ‘신화’라는 단어를 붙여가면서 신성시할 일인지 따져 묻고 싶다. ‘어린 애를 떼어 놓고 일하러 나가는 지독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일터로 나가야 했던 수많은 엄마를 대신해서. 그리고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린 배우 윤여정처럼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자고 다짐한다. 훗날 그녀처럼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이건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사진 출처: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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