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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May 30. 2024

파라과이? 파라과이!

뉴욕 맨하탄 패션디자이너가 파라과이 중장비업 비서로 살게 된 이야기

"자기야.. 아버지가 암 이래, 당장 수술하러 들어가셨어..."

남자친구는 침울함을 넘어 절망의 늪에 머리부터 담근 모습이었고,

그날은 공교롭게도 내가 랄프로렌 뉴욕 본사에 디자이너로 이직한 지 막 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연인사이로 지낸 지 1년을 일주일 남긴 날이기도 했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어떡해...'라는 말뿐이다.


휴가차,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파라과이를 삼 주간 다녀온 지 삼일째.

다녀와서 아버지 어머니와 한 제3국으로의 유학이야기, 치매인 87세 외할아버지 목욕시켜 드린 이야기, 고등학교 동창들 만난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으며 다음에는 너와 함께 가고 싶다며 다정히 손을 꼭 잡았던 그는, 지금 온데간데없다. 아버지의 병마 앞에,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잃은 듯, 머리는 땅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고 눈물은 그 유명한 이과수 폭포처럼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한 번도 만나본적도, 통화해본적도 없는 사진으로만 본 남자친구 아버지의 말기암 소식에 나는 흔들렸다.

그의 눈물에 마음이 아려왔고, 수술 중에 찍은 사진이라는 등이 열린 새빨간 사진을 보고 경악했고, 그 가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마음이 아파왔다. 하필 아버지가 계시는 파라과이 집의 어머니와 딸이 한국에 출타 중이시고 집엔 연로하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뿐이란다.


- 띠리리리리리리 -

급박하게 걸려온 전화기 안에서는 파라과이에서 40시간 거리인 한국에서 바로 달려올 수 없는 어머니가 발을 동동 구르며 당장 파라과이로 돌아와서 아버지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울음을 참으며 침착하게 이어나가신다. 그 전화를 받고 3일 후, 그는 떠났다. 남은 나는 그가 임시로 맡겨놓은 3살짜리 강아지와 그 정신에도 정갈하게 정리해 놓은 아파트키를 받아두며 그가 없는 그의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아침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허드슨 강을 따라 산책하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고 저절로 기도하고 묻는 생활이 며칠이나 지난 걸까.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와중, 나에게 든 생각은 결국 그것이었다.


파라과이? 파라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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