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7살 차이로 아빠는 자영업을 하셨다. 대화가 없던 부모님은 나이차이를 핑계 대셨고, 회사원이셨다가 자영업을 하면 우리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빠의 열 평 남짓한 가게는 일주일의 6일 혹은 7일 하루 10시간 이상을 앗아갔다.
그리하여 아빠는 나에게 너는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평범한 직장의 남자를 만나 비슷하게 행복하게 살아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아니, 그렇게 했다고 믿었다.
우리는 둘 다 뉴욕에서 대기업을 다니는 평사원으로, 남편은 나보다 세 살 많은, Publicis 뉴욕 사옥에서 UX디자이너로, 나는 랄프로렌에서 아우터 디자인 팀에서 근무했다. 우린 26세, 29세의 흔한 직장인으로 친한 친구들이 만난 자리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여기까진 너무나 평범했다.
어느 날 그가 고향인 파라과이로 일순간 돌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지기까지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뉴욕에서 시작된 이야기 같지만 뉴욕은 거의 아니,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린 뉴욕이라는 버블 안에 살아가는 한 회사의 부품이었지만, 파라과이로 강제이송(?) 되며 그 뉴욕의 버블 안에서 발가벗겨진 채 나오게 되어버린다.
그는 한순간에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온 엘리트에서 20대의 끝자락에서 일면식도 없는 11명의 현지인 직원들과 위독하신 아버지의 중장비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고, 나는 뭣도 모른 채ㅡ 그러니까- 스페인어 경험 전무, 운전 경력 전무, 가족 0명, 친구 0명, 시댁식구만 있는 곳에 겁도 없이 이민을 온 입장인 것이다. 피장파장, 너 죽고 나 죽고. 하지만 우린 살려고 온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