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중요하다지만...
남편이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 H를 전화로 축하해 줬다.
"잘됐다! 축하해! 그 나이에 벌써 승진이라니, 대단한걸?"
그러나 친구의 반응이 시원찮다.
"그러게. 근데, 나, 뭔가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음.. 나랑 연차가 비슷한데, 나는 육아휴직하느라고 쉬기도 했고, 남편이 승진 공부 하는 동안 아이랑 집안일은 오롯이 내가 해야 했어. 아무 걱정 없이 공부랑 연구만 하게, 내가 열심히 서포트했고 승진도 성공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해. 나도 승진하고 싶은데, 계속 밀리고 이렇게 도태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돼..."
친구와 남편은 같은 직종의 직장인으로 나이차이가 몇 살 안 난다. 능력도 비슷하단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승진을 기뻐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
그녀는 남편을 "질투"하고 있다.
다른 이성이 생겼을 때만 부부 사이에 질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성공 또한,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30대 여성에게는 질투의 대상인 것이다.
나는 가정을 챙기며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하느라 밤 9시면 아이와 함께 꾸벅 잠이 드는데, 남편은 여유로운 저녁 식사 후 아이를 재우는 와이프 방문이 닫히면 커피 한잔을 내려서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조용한 집에서 두세 시간 집중하여 일을 한 후, 30분-1시간은 영상시청을 하던지 게임을 한 후 잠에 든다.
나는 늘 궁금했다.
왜 많은 남자들은 결혼 전부터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생활 패턴이 바뀌지 않는데, 여자만 유독, 생활이 바뀌는 것일까?
오히려, 결혼 전 하던 것들을 어떤 남자들은 결혼하고 나서는 아예 손을 떼는 일도 있다.
결혼하면 여자에게 으레 생기는 것 TO DO LIST를 정리해 봤다.
+ 빨래
+ 청소
+ 식사준비 (결혼 전 혼자 먹던 것 하고는 뭔가가 다름..)
+ 시댁 경조사 (남편의 식구를 자연스레 대신 챙김)
+ 임신
+ 출산
+ 육아
+ 육성회 관련 활동/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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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 둘, 등에 진 쌀자루 같은 크고 작은 책임감이 여자의 등에 올려지면,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쉽게 일에 완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이가 아까 콧물이 나와 약을 먹었다는데 지금은 어떤지, 이따 가족모임에 갈 때 픽업할 케이크는 다 준비가 됐는지 컨펌을 해야 한다든지...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욱 많아지는 것 같은 일거리와 할 일들은 점점 더 어깨를 눌러오고 남편은 은근히 눈치를 준다.
거 얼마 번다고 애들한테 소홀히 하는 거야?(과 비슷한 말투나 어조나 내용)
그러면 나도 모르게 엄마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런 걸까? 내가 나만 생각하는 것일까?"
둘 다 밸런스가 잘 맞는 환상의 커플들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주변엔 없음 일단)
그렇다면, 일과 가정 둘 다 잘 꾸려 나갈 수는 없을까?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여자가 주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채 그저 앞만 보고 일을 하고 가정은 배우자가 어떻게든 꾸려서 잘하겠지 라며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다.
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부부간에, 지금 서로 느끼는 감정, 그리고 감정노동의 강도,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답인 것이다. 남편도 부인이 모르는 감정이나 힘듦을 가지고 생활할 수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그전에는 내가 해야 되는 일로만 여긴 채 묵묵히 모든 일을 짊어지고 끙끙거린 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을 나눠하거나, 못하는 경우 제삼자의 도움을 끌어오는 방법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질투하지 않는 것.
내가 상대방을 위해 하는 행동이 무조건 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를 위한 상생을 도모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껴안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배우자가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