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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피해자라고 믿었다

피해자에서 벗어나야 진짜 자유가 온다

by 다마스쿠스

나는 오랫동안 ‘피해자’였다.

결혼생활의 많은 부분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는 늘 화를 냈고, 나는 그 화를 피해야 했다.

그가 차갑게 돌아서면, 나는 얼어붙었고,
그가 말 한마디만 던져도 내 하루의 온도가 바뀌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던거 같다.

“나는 당하는 사람이고, 그는 가해자다.”

이 문장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도 편하게 해주는 방어기제였다.


그 단순한 구도가, 지금의 나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언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균열이 생겼다.

<왜 이렇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왜 나는 매번 같은 감정의 늪으로 빠질까?>


그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피해자 프레임(victim mindset)’이라는 게 있다는 걸.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내가 겪은 감정적 피해를 부정하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피해자 정체성’에 머무르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뜻이다.


피해자일 때, 세상은 늘 “나에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가 소리치면 나는 상처를 받고,
그가 침묵하면 나는 불안해지고,
그가 달라지면 나도 편안해졌다.


즉, 내 감정의 리모컨이 그의 손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매일의 기분을 예측하고 조정하며 숨죽여 살았다.


이건 단순히 “그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 내 감정의 권한을 그에게 넘겨준 것이기도 했다.


알고보니 그것은 알지못하는 사이에 자리 잡은 아주 오래된 패턴이었다.


아마도 내 어린 시절, 늘 누군가의 기분(내 경우에는 외할머니, 아버지)을 맞추며 살아온
그때의 ‘작은 나’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피해자 역할 프레임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은
단순히 “이제 난 피해자가 아니야”라고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지루하고, 어쩌면 몇 번이고 밀려 넘어지는 과정이었다.

왜냐면 ‘피해자 프레임’은 때로 안전함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피해자야”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상대에게 돌아간다.


나는 나를 바꿀 필요가 없다. 세상은 나를 안아줘야 하고 나는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 된다.


그 프레임은,,, 슬프지만, 달콤하다.
그래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순진한 피해자로 살며 조용히 남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는..


하지만 남편의 상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문이 열린 틈으로 방 안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분노, 그의 통제, 그의 냉정함 뒤에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도 어릴 때부터 감정이 무시당하고,
언제나 “강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자랐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자기 안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나를 지배하려 했고,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의존했다.


이것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이 아닌, 상처와 상처의 소리없는 대화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모든 게 조금은 달라졌다.


그의 말 한마디가 여전히 아프지만,
이젠 그게 단순히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기 상처를 방어하는 방식”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안아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와 용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당하는 사람”이 아니게 됐다.


그의 행동이 내 자존심 전체를 흔들지는 못했다.
왜냐면 이제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다시 된것이다.


피해자 프레임을 벗어난다는 건 상처를 부정하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의 주인을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는 내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오로지 나만이 나의 상처를 안아주고 보듬어줄수 있다. 내 몸에 생긴 상처가 회복하는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약을 주는 것에 달린 것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살려고 매일 노력한다.
누군가의 기분이 내 하루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의 표정보다 내 감정의 방향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 기분의 리모컨은, 누구 손에 있지?”


그 질문을 던지면, 나는 놀랍게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피해자였던 건 사실이지만, 피해자에 머무는 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속 조연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에서 주연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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