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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l 03. 2024

엄마의 가계부

치열한 엄마의 일상

콩나물 500원, 두부 500원, ㅇㅇ씨 용돈 2000원...


처음 본 엄마의 글자는 참 정갈했다. 검은 볼펜으로 써내려간 단출한 가계부에 나와있는 목록은 특별할 것 없는 주부의 그것이다. 열살이 안된 나는, 그 공책을 사라락 넘겨보다가 비슷한 내용에 있던 곳에 다시 내려놓았다.


가계부는 한권이 아닌 몇권이 함께 보관되어있었는데, 엄마는 몇년간 가계부를 쓰며 아빠의 월급을 관리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때까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였다. 아빠가 아침일찍 나가 밤에 들어오기에 우리는 학교를 다녀오면 늘 엄마와 같이 있었는데, 종종 바느질 삯을 벌기 위해서 어깨뽕을 정신없이 바느질로 이어붙혔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도 작업하고, 미싱을 몇대 가지고 있는 옆동네에 일감주는 아줌마네 집으로 우리를 끼고 가서 바느질을 쉬지 않고 해냈다. 그 곳에는 우리랑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달고 일하고 오는 아줌마들이 몇분 계셨다. 삼삼오오 모여서 부업을 하며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 내려는 엄마였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종종 말씀하셨다. "네 엄마는 너무 똑똑한데 아빠 만나서..."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를 가고 싶었지만 한번 본 수능 점수가 아쉬웠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홀로 식당을 하는 외할머니와 두 여동생때문에 공부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하고 싶다는 공부를 엄마는 할수 있는만큼 끝까지 서포트 해주셨다.)

엄마는 대학을 가지 않고 할머니 일을 도와드리다가 21살때 교회의 집사님의 시동생인 우리 아빠와 중매로 결혼하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은 얼마 안되는 정보인데, 엄마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집안 사정때문에 계속 할수 없었던 것이다. 얼른 시집가서 집에 입하나 덜어주는 것... 그리고 작은 가게 뒷방에서 자지 않고 남편 그늘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21살의 엄마가 생각했던 자유이자 독립이었을까, 35살의 나는 엄마가 치열하고 꾸준하게 써내려간 가계부를 기억하며 엄마가 필사적으로 돈을 관리하고 수입 지출을 적어내려간 이유를 어렴풋이 추측해보았다. 그리고 또한 나는.. 왜 엄마가 그렇게 책을 좋아했는지도 알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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