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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n 27. 2024

엄마 뭐 해?

엄마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엄마 뭐 해?"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있는 방에 목소리를 높여 엄마를 부르곤 했다. 헉헉댈 만도 한데 어린 우리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힘이 넘쳤다. 호기심이 늘 산재해 있고 언제라도 옆집 선희가 부르면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 집은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집으로, 집에 올라가는 것은 산꼭대기를 올라가는 것 같다. 끝이 안 보이는 골목을 다리 힘을 꼭 주고 찬찬히 걸어 올라가면 거의 동네의 제일 꼭대기에, 우리 집이 나온다. 


그리고 그 좁은 집에는 책을 둘 곳이 없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부엌이 있고 거실은 없다. 

그렇기에 할 게 없어 드러누워 호기롭게 올려다본 장롱 위엔 여느 때처럼 빽빽하게 책이 꽂혀있었다. 틈도 없이 꽂힐 법한 게, 장롱 위엔 기껏해야 책을 가로로 눕히면 네 권 정도 들어갈까? 눕힌 책이 옆으로, 옆으로... 열을 맞춰 몇 번이나 들어차있다. 책장은 사치인 작은 안방이었다. 방에는 기다랗고 색이 바랜 작은 이불 장롱 하나, 작은 옷장 하나. 엄마가 혼수로 준비해 온 원목의 다갈색 삼단 서랍장 한 칸. 그리고 그와 세트인 키가 낮은 화장대 하나가 꼭 들어맞았다. 그 위엔 화장에 관심 없는 엄마의 단출한 화장품이 올려졌다. 붉은 립스틱 두 개, 허여멀건한 분 한팩. 불투명한 로션 한병 투명한 스킨 한병. 


엄마는 그 낮은 화장대에서 책을 많이, 많이 읽고 무언가를 써내려 나갔다. 

쓰는 모습도 본적이 많지는 않은 것이, 엄마는 늘 녹색지대 테이프를 틀며 쓸고 닦고, 밑반찬을 하고 고등어를 바삭히 구워 저녁을 해내고, 바느질 삯을 찾아 악착같이 어깨뽕을 꿰매고, 내가 연필을 사각거리며 깎아 숙제하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감독했다. 예의 바쁜 주부의 삶이었다. 


엄마는 22살 봄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에서 나를 가졌다. 그리고 23살 1월 말, 벌써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첫딸이었다.

첫 딸인 내가 찾은 엄마의 첫 공책은, 엄마의 가계부- 그러니까 어느 회사에서 나온 투박하고 검은 표지의 공책에 끊임없이 쓰인 정자체의 글자와 숫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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