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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l 10. 2024

첫 레모네이드

세련된 소설을 좋아하던 엄마였다.

세상에서 처음 소설책을 들춰본날은 빈둥거리며 할게 없는 어느 오후 안방에서 였다.

티비 케이블도 없고, 더군다나 오후 두세시 에는 아무 프로그램도 하지 않는다. 

동생은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있고, 집에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고요하고 따뜻한 한낮의 오후, 난 안방으로 들어가 누런 장판위에 벌렁 들어누운채 천장을 바라보다 이불장 위 켜켜히 쌓여있는 책들중 하나를 골라들었다. 그리곤 손이 가는 아이보리 표지의 책을 사사락 폈다. 지금까지도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유독 좋아하고 책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그리고 책장을 펼쳐들었던 그 곳에서 난 내 생의 첫 레모네이드를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첫장면은 생생하다. 

주인공은 멋진 여성으로, 운동을 한 후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신다. 레모네이드의 달고 신맛을 책은 묘사하고 있엇고, 나는 그 순간 레모네이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9살 달동네 소녀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여성이 되어 레모네이드를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 한번도 맛보지 못했지만 느낄수 있었다. 맛있었다. 달고 시원하고 갈증을 한번에 날려주는 맛이다. 


엄마의 책은 이처럼 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읽는 그 소설은 두권으로 나뉘어 있덨 것 같은데, 결국엔 그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나는 초등학생 주제에 어른 소설에 입문하여 즐겨읽기 시작한것이다(!) 이때부터 소설이 주는 상상의 세계에 푹 빠졌다. 책속에서는 나는 달동네의 할 것 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구든 될수 있었고 그 주인공의 마음과 상황 등을 절절하게 느끼며 시간이 잘도 갔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까?

엄마는 왜 그렇게도 좁은 집에 욱여넣듯이 책을 쌓아 올렸던것일까.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책을 늘 읽고 밑줄 긋고, 뭔가를 써내려간 엄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상상해본다. 내가 그 책을 읽을 당시가 엄마가 일을 시작하실때쯤인지 전인지 몰라도 엄마는 서른 언저리의 나이였다. 서른이라니! 내가 지금 서른 다섯인데, 엄마가 겪고 있던 서른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본다. 어린 나이에 준비없이 엄마가 되어 딸 둘을 이년 차이로 출산하고, 남편이 주는 월급을 관리하며 가계부를 쓰고, 언덕을 내려가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와 손질해 구워먹이고. 눈에 좋다는 결명자 차를 주전자채로 매일 두번 끓어내며 집안을 쓸고 닦던 엄마. 언제 책을 읽었을까? 그리고 소설의 여자가 여유롭게 운동하고 나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장면을 읽으며 엄마도 그 맛을 흡사 느끼고 있었을까? 엄마는 진짜 레모네이드를 몇살에 처음 마셨을까?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소설을 읽던 이십대, 삼십대 초반 엄마를 알고 싶다. 다음에 만나면, 파라과이에서 늘 쉽게 접할수 있는 초록색 레몬으로 시원하고 달게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대접하리, 하며 옆에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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