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은 썼냐는 말이 말이 되나요?

by 순글

"야 00아 그래서 천만 원은 썼냐?"


직장을 다니며 질환으로 인해 잠시간 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했을 때 들었던 하나의 말.

몸을 추스르고 회사에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던 와중에 이처럼 예의 없고 선을 넘는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보아도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말이라고 느껴지니까.


' 사비로만 그건 넘었다 이 사람아! '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성을 내며 외치고 싶었지만 그저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이미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자리 잡은 사람과 트러블이 일어나는 건 나의 직장 생활에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것도 시대의 차이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그저 사람의 차이라고도 생각된다. 그와 비슷한 연령대에도 존중하고 닮고 싶은 사람은 차고 넘치니까.




당연하겠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나의 마음속에서 멀리 떠나가버린 그분


선이 없는 말과 행동들에 의해 사람들에게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평소에도 긍정적인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은 하나의 생각으로 선입견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 내가 존중받는다면 그것은 존중해주어야 마땅한 일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말 그대로 대우받았으면 다시 존중으로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우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를 존중해 줄 만한 가치를 느끼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론 그 당시 내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웃으면서 받아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말을 함에 있어 조심스러움이 섞이고 존중하는 어투가 있는 것과 적절한 선의 구분이 없어 존중을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 싫은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범하게 지내는 것.

이것이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며,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상대의 마음과 순간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은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할 텐데 배려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관통하고 언제나 되뇌는 삶의 지향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 나이를 먹어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Photo by Thomas Lefebv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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