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생들 지필평가 성적을 확인하는 중이다.
어제 수업이 안 들었던 반의 수업이 들었던 오늘.
이 반 학생들은 정말 성격이 좋다. 아이답고 활발하고 서로 워워워 북돋워 주는 반 분위기의 학급이다.
수업을 들어가면, 같은 학년이더라도 반마다 반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학급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학습 분위기도 다르고, 발표하는 모습도 다 다르고, 노는 활동을 할 때 보이는 모습도 다 다르고...
말이 적고 조용한 사람이 있듯, 말이 많고 리액션이 큰 사람이 있듯, 학급도 바로 그렇다.
오늘 수업이 있었던 한 반은 정말 차분하고 조용하여 말이 없는 반이다. 뭘 하라고 하면 조용히 그것만 하는 반. 그러면서 이 반은 성적이 1등인 반이다.
또 다른 한 반은 정말 활달함의 최고점. 천진난만하고 놀라고 하면 정말 잘 노는 반. 수업 태도도 좋고 수업할 때 흥도 제일 많이 나는 반인데, 신기하고도 놀랍게 성적은 꼴등인 반.
이 두 반에 교생 선생님과 들어가서 성적 확인을 하고 독서 활동을 하고 국어 부장을 뽑고, 교생 선생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내일 치러지는 수행평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이게 오늘 수업 활동이었다.
A반은 조용히 독서 활동을 하며 교생 선생님 주도의 성적 확인을 별말 없이 잘 끝냈다. 교생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시간엔 소수의 몇 명 학생만 한참씩 뜸을 들이며 질문을 했다.
B반은 교생 선생님과 내가 교실을 들어간 순간부터 조금도 쉬지 않고 35분간 교생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정말 다양한 질문을 잘도 물어보는 아이들.
그런데, 정말 다양한 내용의 질문을 이렇게 밝게, 잘하면, 질문을 받는 사람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학교를 졸업한 교생 선생님이었기에 학창 시절 이야기를 선배로서 들려주니 학생들에겐 더더욱 꿀 떨어지게 재미있고 신기한 얘기들이었다.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며 엽떡(엽기떡볶이)을 시켜 먹으셨던 얘기, 교실 구석의 기둥에 숨어 친구들하고 선생님들 몰래 나눠 먹었던 추억까지 어찌하다 다 이야기하시게 됐고, 학생들을 "우와~~" 탄성을 지른다.
교생 선생님께서 이 얘기까지 해 주시자 뒤에 서 있던 나를 아이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내 반응이 보고 싶은 것이겠지. 학생들은 이 이야기가 높은 수위의 이야기라 여긴 것일까? 이쯤 얘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질문을 요리조리 잘하는 B반에서는 교생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 남자 친구를 사귀었던 얘기까지 해 주시게 되었다. 그 스릴 넘쳤던 감정의 핑퐁 연애썰을 생생하게 들려주시니 학생들은 완전 몰입하여 웃고 좋아하고 난리이다.
교생 선생님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서 종 치기 전에 성적 확인을 할 수 있을까... 시간 안배가 필요했다. 뒤에 서 있던 내가 앞에 나아가서 교생 선생님께 학생들 성적 사인을 하자는 얘기를 하니,
학생들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학생들 : "네? 샘? 교생 선생님 하고요?"
나 : "네, 선생님께서 학생 성적 확인하는 것도 실습하셔야 해요. 다른 반도 학생들이 다 동의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학생들(나에게) : "오.... 선생님.... 제발..... 오.... 창피해요. 신비롭게 남고 싶어요."
정말 난리, 난리. 난리이다. 거의 다 남학생들이.
이게 반 분위기이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반은
"네, 좋아요. 첫날이라 선생님 어차피 우리 잘 모르시니까!"
라고 말하며 그 어떤 반응도 없이 순순히 사인들 하고 했는데...
B반은 다르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정말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치는 아이들...
그래도 B반은 그럴 만하다고 느꼈다. 35분을 질문하고 답하며 교생 선생님과 웃으며 눈 마주침을 했으니, 이제 교탁 앞에 나와서 교생 선생님 코앞에서 자기 성적을 확인하고 사인하는 게 불편할 수 있지 싶다. 35분간 좋은 이미지로 기분 좋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말이다.
나랑은 괜찮은 걸까? 첫 지필평가 결과라 자신들 성적을 국어 교과 선생님인 나에게도 처음 오픈하는 것인데, 이 나는 괜찮고 교생 선생님은 안 되나 보다. 하하.
결국 난 선심 쓰는, 눈치 있는 교과 선생님 역할을 했다.
"좋아요, 여러분 반은 교생 선생님과 대화를 너무 잘 나누어서 그럴 만도 해요. 신비롭게 남고 싶은 마음. 오케이. 자, 성적은 저와 확인하기로 하고, 그럼 여러분, 교생 선생님이 35분간 이렇게 많이 오픈하고 얘기를 들려주셨는데, 여러분도 선생님께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아요? 저랑 성적 확인하는 동안 교생 선생님께 뭔가를 보여 드려 보세요."
이런 말도, 그게 통하는 반이라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B반은 평소 흥도 많고 빼는 것도 없고 뭘 하라고 하면 엄청 잘 노는 반이라 얘기를 했다.
학생들은 바로
자기네 반에 가수 누가 있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바로 노래 릴레이를 한다. 태블릿으로 배경 음악을 깔고 앉은자리에서 교생 선생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 캬~~~ 가수가 정말 많아서 노래를 듣는 내내 행복했다. 한쪽에선 성적 확인을 하는 줄을 쭉 늘어섰고, 또 한쪽에서 예쁜 교생 선생님 보시라고 스스럼없이 노래 한 가닥 뽑는 학생들.
아, 아름답다.
이 젊음. 이 추억.
아이들이나 교생 선생님이나 오늘 수업 장면이 꽤 오랜 시간 기억날 것이다.
교실을 나오는 교생 선생님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 진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 거군요. 오, 애들이 엄청 잘 물어봐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교생 실습 올 때 절대 첫 연애 얘기는 안 해야지 다짐했었는데... 물으니까 그냥 다 얘기하게 돼요. 선생님."
ㅎㅎㅎ
B반 애들, 나한테는 그런 거 묻지도 않는다. ㅎㅎ
나도 뭐, 물어도 쉽게 얘기 안 해 줄 거다.
나와 B반 학생들 간의 끌어당김보다
교생 선생님과 B반 학생들 간의 끌어당김이 더 세고 재미있다.
이게 자연의 이치겠지?
교생 선생님 앞에서 자기 성적을 오픈하는 걸 수줍어하던 남학생들의 그 마음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우리 아들에게도 이런 교생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 아들도 교생 선생님 앞에서 이렇게 수줍음을 탈까?
오늘 수학여행을 떠난 고2 나의 아들.
지나고 보면, 하루하루의 공부 기억보다 단 한 번의 엽떡 일탈이 더 오래 남는다.
평생 기억나는 건 학창 시절의 오늘과 같은 장면이 아닐까 싶다.
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