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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May 09. 2024

고3 졸업 앨범 촬영

학교 현장 에세이

알람을 하고 잤다. 앨범 촬영이라는 알람.

 

요즘은 알람이 없으면 뭘 하는 날인지 깜박깜박 잘 잊어버린다.

오늘은 고3 졸업 앨범 촬영이 있고, 교사도 개일 앨범 촬영이 있는 날이다.


며칠 전, 교사 정보 동의서가 돌았다. 쉽게 말해 사진을 찍을지 말지 묻는 종이가 돌았다는 얘기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졸업 앨범에 교사 사진이 실리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기에 요즘은 사전에 이런 동의서가 돈다.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적으로 찍고 싶지 않은 교사들도 주변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찍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경력이 많은 부장 교사들도 안 찍는 경우가 많다. 경력이 많든 적든 교사들은 자기 사진이 졸업 앨범에 실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학생들 중에서도 찍는 걸 원치 않는 학생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예전, 그러니까 대략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그렇게 안 하겠다는 학생은 '뭐지?'라는 시선을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받았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찍고 말고는 당연한 선택 사항인 거고, 교사들이 찍을지 말지도 당연한 선택이자 권리인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나는 왜 알람까지 하며 사진을 찍으려 하냐면,

지금 고3이 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이라, 그래도 담임이었던 내 사진이 없으면 학생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내 착각이든 뭐든, 그래도 졸업을 하면 졸업 앨범을 학생들은 소중은 여기고 가끔 들춰 보는데, 자기를 가르쳤던 선생님, 특히 좋아했던 선생님, 그리고 담임이었던 선생님 사진이 있어야 좋지 않을까 싶다. 난 그중에, 최소한 담임이었던 선생님이니 '찍자!'라는 큰 마음을 먹고 사진을 찍는다.  


학교 밖 사람들은 이 마음이 뭔지 잘 모를 것 같다. 학교 밖 세상에서는 학생들 위주로 학교를 바라보니까 말이다. '학생들 졸업 사진에 당연히 교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 그런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 그게 교사들에겐 부담인 게 사실이고, 요즘은 그 부담에 '노우'라고 말할 수 있고 '노우'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딸아이에게 이 얘기를 했었다.

"엄마 핸드폰 번호 바꾸고 싶어."

"왜?"

"아!!!!!  사라지고 싶어. 학생, 학부모... 모든 사람들 속에서 쏙 내가 사라지고 싶어."

"엄마, 뭐야? 왜 그래?"

"아니, 선생님도 좀 자유롭고 싶다고. 졸업한 학생 학부모 전화기에 내 번호 다 남아 있는 거 싫어. 부담스러워. 그래서 아예 번호를 싹 바꾸고 싶다고."


이 말을 들은 딸아이는 심각한 표정, 울적한 표정으로 몇 시간 뒤 나에게 와서 묻는다.


"엄마, 선생님들 마음은 다 그래?"

"왜? 보통은 그렇지. 왜?"

"나, 한문 선생님 너무 좋은데, 졸업하면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싶어서 졸업 전에 선생님 연락처 물어보려고 했단 말이야. 선생님이 싫어하실까?"

"... .... ...."

그 뒤의 딸과 나눈 긴 얘기는 생략하겠다.


딸아이는 며칠간 정말 우울 모드가 되었다. 사라지고 싶은 선생님들의 마음을 날 통해 알게 된 딸. 마냥 여고생 같은 감성만 충만한 딸아이는 선생님의 이 마음이 너무너무너무 서운하여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딸아이가 상심한 표정을 보면 안쓰럽고...

며칠 뒤 한문 선생님의 연락처를 결국 묻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선생님 통해 먼저 알게 된 뒤, 딸아이는 다시 행복해졌다.


딸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

이 두 마음이 다 공존한다.


난 올해까지는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아직 핸드폰 번호는 바꾸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적으로 하나만 얘기하자면 이거다.

내 카톡에 친구로 뜨는 사람이 1,500명이 넘는다는 것. 내 핸드폰 연락처를 싹 다 정리를 했는데, 그 뒤에도 누군지도 모르는 그 많은 사람이 친구로 뜬다. 그들이 나를 친구로 등록해 놓았기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며칠 전 귀찮음을 무릅쓰고 600장 넘게 있는 내 카톡 프로필을 '나만 보기'로 다 바꿔 버렸다. 글까지 같이 '나만 보기'로 바꾸자니 1200번 넘게 일했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아팠으나... 그렇게 했다. 핸드폰 번호는 당장 못 바꾸더라도... 이러고 싶어서.  


지금 내 마음 상태는 이거다. 학생들과 사이가 좋고, 나름 따르는 학생이 있어도 교사로서의 나와 현실 생활 속의 나는 분리되길, 난 바란다.


몇 년 전 부장 교사를 할 때, 학년부 담임 선생님께서

"부장님, 저희 학년 담임교사 전체 연락처를 학생들에게 공개 안 하면 안 될까요?"

라고 물었었다.   


그 당시에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운 건의였다. 학년 부장으로서 오케이 할 수 없는 얘기.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학교는 지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교사의 신상이 공개되는 게 당연하지는 않다. 밤늦게까지 교사 개인 핸드폰으로 문의 전화를 하는 학부모들이 의외로 꽤 많다. 학교는 변화가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교사의 신상 공개가 당연하다는 인식에서 이제는 교사도 자기 신상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말이다.


학교 출근 후 아침 9시 전, 교사 사진 찍는 곳으로 가서 일찍 사진을 찍었다. 오늘 촬영을 위해 사진에 잘 나오는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고3 나의 제자들을 생각하며, 그 아이들에게 내 얼굴을 남겨 주고 싶어서.


오후에 학교에서 위탁교육 기관에 가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는, 내가 담임했던 고3 제자를 만났다. 이 아이는 보통 때는 학교에 거의 안 온다. 자동차 정비일을 배우는 위탁교육 기관을 가서 수업을 듣는데 그게 이 아이에겐 학교 출석이 된다. 내가 작년 1년 학교에 없었기 때문에 고1 마치고 지금 처음 보는 거다. 얘는 1학년 나와 대화도 많이 하고, 상담도 많이 했는데 서로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이이다.

"00야, 고3 앨범 사진 찍으러 학교 왔구나. 반갑다. 너 보니까 샘 학교 돌아온 기분 확 난다."

얘도 무지무지 반가워했다.


그래, 00이도 졸업 앨범 사진 찍으러 학교 왔구나. 오늘.


앨범 사진 찍느라 고3 학년 층 전체가 정신없고 시끄러웠던 오늘,


이런 무거운 얘기가 될 줄은 몰랐으나 손이 이렇게 갔다.

이 매거진은 학교 현장 에세이라 지우지 않고 발행한다.


학생의 얘기, 교사의 얘기, 내 얘기.


# 아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보내 준 사진이다. 눈이 시원해지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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