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사 정보 동의서가 돌았다. 쉽게 말해 사진을 찍을지 말지 묻는 종이가 돌았다는 얘기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졸업 앨범에 교사 사진이 실리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기에 요즘은 사전에 이런 동의서가 돈다.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적으로 찍고 싶지 않은 교사들도 주변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찍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경력이 많은 부장 교사들도 안 찍는 경우가 많다. 경력이 많든 적든 교사들은 자기 사진이 졸업 앨범에 실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학생들 중에서도 찍는 걸 원치 않는 학생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예전, 그러니까 대략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그렇게 안 하겠다는 학생은 '뭐지?'라는 시선을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받았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찍고 말고는 당연한 선택 사항인 거고, 교사들이 찍을지 말지도 당연한 선택이자 권리인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나는 왜 알람까지 하며 사진을 찍으려 하냐면,
지금 고3이 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이라, 그래도 담임이었던 내 사진이 없으면 학생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내 착각이든 뭐든, 그래도 졸업을 하면 졸업 앨범을 학생들은 소중은 여기고 가끔 들춰 보는데, 자기를 가르쳤던 선생님, 특히 좋아했던 선생님, 그리고 담임이었던 선생님 사진이 있어야 좋지 않을까 싶다. 난 그중에, 최소한 담임이었던 선생님이니 '찍자!'라는 큰 마음을 먹고 사진을 찍는다.
학교 밖 사람들은 이 마음이 뭔지 잘 모를 것 같다. 학교 밖 세상에서는 학생들 위주로 학교를 바라보니까 말이다. '학생들 졸업 사진에 당연히 교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 그런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 그게 교사들에겐 부담인 게 사실이고, 요즘은 그 부담에 '노우'라고 말할 수 있고 '노우'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딸아이에게 이 얘기를 했었다.
"엄마 핸드폰 번호 바꾸고 싶어."
"왜?"
"아!!!!! 사라지고 싶어. 학생, 학부모... 모든 사람들 속에서 쏙 내가 사라지고 싶어."
"엄마, 뭐야? 왜 그래?"
"아니, 선생님도 좀 자유롭고 싶다고. 졸업한 학생 학부모 전화기에 내 번호 다 남아 있는 거 싫어. 부담스러워. 그래서 아예 번호를 싹 바꾸고 싶다고."
이 말을 들은 딸아이는 심각한 표정, 울적한 표정으로 몇 시간 뒤 나에게 와서 묻는다.
"엄마, 선생님들 마음은 다 그래?"
"왜? 보통은 그렇지. 왜?"
"나, 한문 선생님 너무 좋은데, 졸업하면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싶어서 졸업 전에 선생님 연락처 물어보려고 했단 말이야. 선생님이 싫어하실까?"
"... .... ...."
그 뒤의 딸과 나눈 긴 얘기는 생략하겠다.
딸아이는 며칠간 정말 우울 모드가 되었다. 사라지고 싶은 선생님들의 마음을 날 통해 알게 된 딸. 마냥 여고생 같은 감성만 충만한 딸아이는 선생님의 이 마음이 너무너무너무 서운하여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딸아이가 상심한 표정을 보면 안쓰럽고...
며칠 뒤 한문 선생님의 연락처를 결국 묻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선생님 통해 먼저 알게 된 뒤, 딸아이는 다시 행복해졌다.
딸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
이 두 마음이 다 공존한다.
난 올해까지는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아직 핸드폰 번호는 바꾸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적으로 하나만 얘기하자면 이거다.
내 카톡에 친구로 뜨는 사람이 1,500명이 넘는다는 것. 내 핸드폰 연락처를 싹 다 정리를 했는데, 그 뒤에도 누군지도 모르는 그 많은 사람이 친구로 뜬다. 그들이 나를 친구로 등록해 놓았기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며칠 전 귀찮음을 무릅쓰고 600장 넘게 있는 내 카톡 프로필을 '나만 보기'로 다 바꿔 버렸다. 글까지 같이 '나만 보기'로 바꾸자니 1200번 넘게 일했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아팠으나... 그렇게 했다. 핸드폰 번호는 당장 못 바꾸더라도... 이러고 싶어서.
지금 내 마음 상태는 이거다. 학생들과 사이가 좋고, 나름 따르는 학생이 있어도 교사로서의 나와 현실 생활 속의 나는 분리되길, 난 바란다.
몇 년 전 부장 교사를 할 때, 학년부 담임 선생님께서
"부장님, 저희 학년 담임교사 전체 연락처를 학생들에게 공개 안 하면 안 될까요?"
라고 물었었다.
그 당시에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운 건의였다. 학년 부장으로서 오케이 할 수 없는 얘기.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학교는 지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교사의 신상이 공개되는 게 당연하지는 않다. 밤늦게까지 교사 개인 핸드폰으로 문의 전화를 하는 학부모들이 의외로 꽤 많다. 학교는 변화가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교사의 신상 공개가 당연하다는 인식에서 이제는 교사도 자기 신상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말이다.
학교 출근 후 아침 9시 전, 교사 사진 찍는 곳으로 가서 일찍 사진을 찍었다. 오늘 촬영을 위해 사진에 잘 나오는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고3 나의 제자들을 생각하며, 그 아이들에게 내 얼굴을 남겨 주고 싶어서.
오후에 학교에서 위탁교육 기관에 가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는, 내가 담임했던 고3 제자를 만났다. 이 아이는 보통 때는 학교에 거의 안 온다. 자동차 정비일을 배우는 위탁교육 기관을 가서 수업을 듣는데 그게 이 아이에겐 학교 출석이 된다. 내가 작년 1년 학교에 없었기 때문에 고1 마치고 지금 처음 보는 거다. 얘는1학년 때 나와 대화도 많이 하고, 상담도 많이 했는데 서로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이이다.
"00야, 고3 앨범 사진 찍으러 학교 왔구나. 반갑다. 너 보니까 샘 학교 돌아온 기분 확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