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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May 22. 2024

의무감

수정 없는 의식의 흐름

재미없는 말이다. 의무감은 재미없다. 의무감은 재미가 없는데 의무감은 삶에 꼭 필요하다. 의무감이 없는 사람은 주변 사람이 피곤하다. 의무감이 크면 본인이 피곤하다. 하지만 의무감이 있어야 뭐든 생활이 잘 돌아간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의무감의 중요성을 현실 속에서 절실히 느꼈던 때는 세월호 때다. 굳이 이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근데 이 말 하나만. 다들 어떤 직업이든. 어떤 일을 하든 자기가 해야 할 의무감을 성실히 제대로 실행했어야 한다. 본인은 귀찮고 힘들어도 했어야 한다. 그게 의무감이다. 세월호 얘기는 마음이 무거워 안 하고 싶다. 오늘 앞 선생님은 학생들 동아리 활동으로 세월호 기념 전시관을 다녀오셨다. 나의 의무감 주제와 오늘 동아리 활동 간 선생님이 이야기는 상관이 없었는데 이렇게 연관이 된다. 오늘 비행기 사고 뉴스를 봤다. 난기류가 참 무섭구나. 사고 상황을 자세히는 모른다. 그래도 그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 많이 무서웠겠지. 사상자가 많다. 가족이 오늘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갔는데. 그 가족은 나의 딸인데. 딸은 다행히 잘 도착했다. 의무감은 피곤한데. 난 나의 의무감을 항상 꼬리 물듯 잇고 있다. 굵직한 의무감은 직업. 직장 출근하는 것. 내 몫을 하는 것. 자잘한 의무감은 나머지 것들. 엄마로서의 의무감. 아까 아들 감기 걸렸기에 약을 챙겨주는 행위. 그건 사랑과 관심의 빛깔을 띤 의무감이다. 엄마 역할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작용했다. 새벽에 하는 나의 의무 행위도 있다. 장기간으로 하는 의무 행위도 있다. 2020년 2월부터 매일 하고 있는 의무 행위. 이 글쓰기도 내가 정한 하나의 의무감이다. 글을 안 쓰게 되어. 일상에 묻어서 그냥 글 없이 사는 나에게 의무감을 부여했다. 아무 글이라도 한 달간 매일 글쓰기. 오늘 이 미션이 지겹도록 한숨 나오는 의무감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 나의 글쓰기 제목은 의무감이다. 난 일단 제목을 정한다. 자유연상으로 떠오르는 걸 무시하지 않고 그냥 얹는다. 그리고 수정 없이 쭈욱 쓴다. 심한 오타만 수정하는 정도이다. 문맥의 틀을 다듬지 않는다. 말이 되거 안 되건. 난 자유롭게 쓴다. 단지 의무감을 갖고 매일 쓴다. 30일 쓰기를 정했다. 반 정도 와 가나? 글 같지도 않은 습작 글일지라도 어찌 됐든 글이 쌓이고 쌓이고 한다. 의무감은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거다. 왜 칸트가 떠오를까? 난 칸트를 존경한다.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 그 마을 시계 역할을 했던 칸트. 사람이 그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자신이 정한 규칙을 정확히 따르는 사람. 의무감 하면 난 칸트도 떠오른다. 니체에 관한 글을 요즘 안 쓰고 있다. 삶이 번잡하다. 할 일도 많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면 의무감으로 매달려야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난 글 쓰는 작가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퇴직 후엔 글을 써도 이 작가라는 것을 직업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엘사가 떠오른다. 오늘 수업 중 너무 웃겼던 여학생의 손동작이 떠오른다. 머리가 엉덩이 아래까지 자란, 머리를 기르는 여학생인데, 오늘 교생 선생님이 자신이 갖고 싶은 초능력을 적어 보라고 했는데, 그 여학생은 자신이 엘사가 되고 싶단다. 그리고는 손으로 솩솩솩 엘사의 주특기. 그것. 주변을 얼음 동산으로 만드는 그 마법. 그걸 하고 싶단다. 하하. 귀여운 소망이다. 나는 초능력을 가지면 뭘 하고 싶나 아까 밤에 날 위한 밥상을 차리며 생각해 봤다. 푸하하하하 난 너무 웃긴 것. 아니 너무 진지한 것. 이게 떠올랐다. 부처님 살던 시대로 가서 부처님 앞에서 친견하고 말씀을 듣고 싶다. 그냥 앉아 있고 싶다. 이런 게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으로 떠오르다니. 웃기다. 난 종교도 없는 사람인데. 하필 부처님이 떠올랐네. 오늘 아까 유튜브를 보다 보니, 스스로를 수행하다 미라로 만드는 스님 얘기가 나왔다. 기괴스럽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집착 아닐까. 의무감은 꾸준함이다. 그 대신 성실하고 아름다운 의무감은 집착이 아니다. 집착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는 의무감. 그게 힘이 있다. 난 이 속담을 참 좋아한다. 뚜벅뚜벅 걸어도 황소걸음. 자, 나의 오늘 의무감 황소걸음 끝이다. 딸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평소 안 하던 전화 통화 벌써 7-8번은 했다. 외국 가니 엄마 생각이 나나 보다. 외롭단다. 짜식. 자, 이렇게 엄마의 의무감 하나 또 하고 글을 맺는다. 이제 직업 의무감을 할 예정이다. 시험 문제 출제를 할 거다. 집에 혼자 있고 아주 딱이다. 오늘은 개구리가 덜 운다. 개구리가 우는 건 의무감일까? 태생적으로 그런 거니 숙명이고 의무 행위일 수도 있겠네. 뭐 말이 되건 안 되건 편히 쓸 수 있어서 좋다. 깊이 생각 안 하고 바로 타이핑. 난 원래 이런 글을 무지 좋아한다. 끝.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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