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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n 05. 2024

칭찬받은 손톱

학교 현장 에세이

오늘 5교시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었다. 내가 부담임인 반에 들어가서 학생들 창체 교육을 지도하는 시간.


식품 생활과 관련된 20분 정도의 TV방송 교육이 끝났다. 중간에 과학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셔서 과학 수행평가 채점 결과 확인을 시키신다.


학생들은 오늘 매우 UP상태인 날.

사실 나도 감정적으로 UP상태인 날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간만 끝나면 목, 금, 토, 일. 4일간의 연휴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창체 교육이 끝나고 남은 20분, 공부하라고 하기 힘든 반 분위기이다. 학생들의 감정 상태가 완전 붕붕 뜨는 날, 친구들하고 말장난하고 노는, 장난기 드글드글 상태.


엄한 표정으로 굳이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뭐 옆 반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거 편히 하며 쉬는 20분으로 보내도 좋지 싶은 시간.


한 학생이 국어 수업 시간에 종종 하는 눈치 게임을 하자고 했다. 지금?

"그래, 널 잠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섭외하마. 앞에 나가서 아이들에의견 물어보고 놀자면 그렇게 하고 놀아봐. 공부하자고 하면 공부하고."


물론 나나 학생이나 안다. 학생들 그 누구도 공부를 하자고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 괄괄하고 목청소리 좋은 남학생이 교탁 앞에 나와서 묻는다.


"얘들아, 같이 놀까?"

"(ㅋㅋㅋㅋ) "


각자 노느라 정신이 없다. 대답도 시원찮고. 남학생은 씨익 웃으며 슬금슬금 들어가서는 자기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대열에 가서 끼어 앉는다.


그래, 그래. 오늘은 전체 같이 집중해서 노는 것도 안 될 분위기의 날. 그냥 마냥 자유롭게 토크하고 팔씨름하고, 얘기 나누며 노는 날. 딱 그게 맞는 분위기.


그래서, 난 칠판 정 가운데에 썼다.

"각자 자유 놀이"


한 여학생이 또 와서 묻는다.

"선생님, 우쿨렐레 연주 해도 될까요?"   

"응, 그래. 연주해."


어차피 애들도 편히 노는 분위기, 음악까지 있으면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그 여학생이 2 분단 뒤쪽에서 연주를 하자, 3 분단 앞쪽에 있던 남학생도 우쿠렐레를 꺼내서 연주를 한다. 노래도 같이 한다. 그 앞에 여학생도 뒤돌아 앉아서 둘이 같이 노래를 한다. 음.... 예쁜 모습.


노래를 제법 잘하네. 나도 모르게 그 학생 주변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학생은 음악 시간이 즐겁다면서 음악 시간에 우쿨렐레 연주를 한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범을 보인다. 에어컨 바람에 날리는 악보를 내가 손으로 잡아 주고, 남학생은 연주를 하며 노래를 하고, 나도 흥얼흥얼 따라 하고 그 앞에 앉은 여학생도 노래를 같이 하고....


아, 좋다.


지금 이 교실 풍경이 누군가의 눈에는

완전 '엉망진창'으로 보일지 모르겠지. 하지만 내 눈에는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들에게 딱 필요한, '힐링'시간이다. 안전하고 편한 자기들의 교실, 편하고 놀기 좋은 반 친구들. 뭘 해도 되는 자유로운 시간. 선생님이 허락해 주고 같이 있으니 마음도 편하고...


내 보기에 애들은 힐링 타임을 제대로 즐겼다.


책을 읽는 학생 몇 명, 팔씨름 대회를 하는 남학생 셋, 게임 얘기로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남학생 여럿, 그 와중에 영어 단어장 펼치고 외우고 있는 여학생, 우쿨렐레 연주 무리 두 팀 여러 명, 나에게 와서 내 손에 든 종이 부채를 펼쳐 봐도 되는지 묻는 남녀 학생들. 그냥 앉아서 짝꿍과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반 전체를 순시하며 아이들과 말을 걸고 논다. 며칠 전, 궁예처럼 애꾸눈 상태의 안대를 했던 여학생. 오늘은 안대를 빼고 앉아 있네. 그 학생에게 가서 말을 거니, 자기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단다. 눈에서 피가 흘러 내려서 어찌저찌.... 의사 선생님 약 먹고 3일 되니 나아서 안대를 풀었단다. 아, 그렇구나.


저번 발표 때 정신력 최강임을 보여 주었던 여학생은 2 분단 맨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 아이 짝꿍과 그 아이. 나 이렇게 셋이 대화를 나눈다. 그 짝꿍 아이는 서기라서 정말 매 시간 교과 선생님들께 출석부에 사인하셨냐고 와서 꼼꼼히 점검하는 학생이다. 정말 정말 성실히 일을 하는 학생.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말도 참 많이 나눈 학생이다.

그 여학생이 며칠 전부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을 들고 있는 걸 봤다. 내가 옆에 가 있으니, 윤동주의 시집 어느 쪽을 펼쳐서는

"선생님, 이 시집, 도통 무슨 말이지 모르겠어요. 특히 이 시, 이건 알 수 없게 시가 끝나니까 더 궁금한데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소리 내어 자꾸 읽어봐. 몰라도 돼. 그냥 읽고 느껴 봐. 선생님은 여기, '별 헤는 밤'을 좋아해."


귀여워라. 똘망똘망 이 여학생. 자기 복숭아티를 마셔 보라며 나에게 자기 텀블러를 내민다. 학교 점심 급식 때 텀블러를 가져온 학생에게 복숭아티를 나눠 주는 행사를 한 날이었는데... 텀블러에 한가득 담아 왔나 보다.

"선생님이 마셔도 돼?"

"네!"

"진짜?"

"네!"

그래서, 맛있게 마셨다. 주니까 마시지. ㅋㅋ 아이, 시원해.


그 옆 짝꿍이 자기도 마시겠다며 내가 먹던 텀블러를 받아다가 자기 입에 가져다 댄다.


음.... 뭔가 굉장히 편하고 말랑말랑한 이 느낌...

평소 수업 시간 때랑은 또 다른 그 뭔가의 편한 느낌. 참 좋다.


내가 좋았으니 학생들도 좋지 않았을까? 사람의 감정은 같이 통하니까. 오늘 이 창체 시간의 자유로움을 외부에서는 소란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 공간 안의 우린,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학생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고 나오기 전,

아까 그 복숭아티를 나누어 먹은 여학생이 내 손톱을 가리키며 말한다.


"선생님, 이거 예뻐요."

"아, 네일~~~~ ^^ 응, 예쁘지."


이렇게 웃으며 대화한다.

학생들은 칭찬도 잘한다. 귀걸이를 하고 가면,

"선생님, 귀걸이 예뻐요"


치마를 입고 가면

"선생님, 지적여 보여요."


네일 아트를 하고 가면 오늘처럼

"선생님, 손톱 예뻐요."


하하하... 손톱까지 칭찬받는 나.

아, 그래그래 이게 행복이지.


나, 손톱까지 예쁘다고 칭찬받는 아줌마야.


아, 어떤 반에서 스승의 날 전 날인가

칠판에 여러 명이 그림을 그리고 꾸몄었다. 교생 선생님과 내 얼굴을 그리고 아기자기 뭐뭐뭐 써 놨었는데.

딱 봐도 교생 선생님은 예쁘고 젊은 선생님 얼굴, 내 얼굴을 웃고 있어도 딱 아줌마 얼굴.

그래서 내가 막 웃으며 학생들에게


"하하, 완전 잘 그렸네요. 그래. 난 아줌마 같지만 맞지. 아줌마"


이렇게 말했는데, 아이들은 완전 속상한 얼굴로

"아, 아니에요 선생님... 앙.... 아닌데!!!(귀엽게 우는 표정)"


뭐, 어때. 아줌마가 아줌마로 보이는 거. 이렇게 웃는 얼굴로 예쁘게 그려 준 게 어딘데.   


이게 내 마음인데, 학생들은 아기들 마음처럼 순수하다. 그 아줌마같이 보인다는 내 말에, 자기들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 속상한 표정을 짓는 그 맑은 마음.


이 어리고 순수한 학생들과 들들 볶고 생활하는 학교.

애들이 예뻐도 애들 안 보고 쉴 수 있는 휴일 4일은 완전 꿀이다.


그래, 손톱까지 칭찬받은 오늘은

4일간의 휴일 시작 전날 밤.

생각만 해도 미소가 팍팍 지어지는 날이다.


아이고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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