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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n 26. 2024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철학 공부 끄적임

코나투스(Conatus)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이해할 때 필요한 개념이다. 코나투스는 라틴어로 '노력'을 뜻하는 말로 이 세상 존재자의 충동을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자기 보존 욕망인 코나투스를 갖고 있다. 인간의 코나투스, 사자의 코나투스, 바위의 코나투스, 식물의 코나투스가 다 다르다. 각 개별자는 자기의 코나투스에 의해 움직인다.


인간 존재의 다양한 노력과 애씀, 자기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애씀인 이 코나투스가 정신으로 표현되면 의지이고, 정신과 육체 모두로 표현되면 욕구이며 인간 존재 전체로 표현되면 욕망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를 사물의 본질, 삶의 본질이라 하였다.


자기 보존을 위한 노력인 코나투스는 자기 자신의 완전성을 위한 노력이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본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기 존재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면 자신이 바라던 모습인 완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삶에 있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타자와의 관계는 나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데 이 자극으로 인해 나의 신체 활동 능력은 증가할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다.


신체 활동 능력이 증가하면 기쁨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신체 활동 능력이 감소하면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우리 인간은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 즉 코나투스를 증가시키기 위해 신체 활동 능력을 높이고 기쁨의 감정을 유지시키려 노력한다고 하였다.


스피노자는 선악의 개념도 코나투스를 통해 이해한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맺을 때 그 대상과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선, 악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는 코나투스의 관점에서 신체 활동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선이고, 신체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악이라 하였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긍정하였다. 욕망이 삶의 본질인 코나투스이기에,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를 증가시키기 위해 욕망에 따르라고 이야기한다. 삶의 본질을 욕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는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는 통한다.


하지만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결핍감을 느끼게 되고 고통을 겪는다. 그러하기에,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부정하며 그것을 절제할 것을 강조했다. 바로, 금욕주의.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삶의 방법이었는데, 스피노자는 이와 다르다.


욕망을 긍정하고 이것을 따르라고 말한다. 그는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기쁨을 지향하고 기쁨을 키울 것을 권한다. 슬픔을 거부하고 슬픔을 줄일 것을 권한다. 이것이 그의 기준에서는 '선의 추구'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 선의 추구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한 사람이었기에 이 선의 추구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증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기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관계들, 그런 공동체가 개인과 타인 모두의 코나투스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에 이런 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난 뒤 살해 위협도 당하고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항상 '주의'(Caution) 문구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며 살았던 스피노자. 그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공동체는 마냥 누군가와 함께 있기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서로의 기쁨을 신장시킬 수 있는 기쁨의 공동체, 신체 활동 능력을 키워 주고 서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 바로 그런 공동체였다.


유대 사회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 주변엔 항상 그를 챙기고 추종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건강을 알뜰히 챙겨주는 의사 친구도 있었고 말이다. 그 시절엔 피를 맑게 하기 위해 살을 베고 피를 뽑아 버리는 일을 치료라 생각하고 시술하기도 했데, 스피노자도 친구에게 그런 치료를 받는다.


이런 자신의 삶도 그는 신체 활동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기쁨 공동체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종교의 틀로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사유로 신체 활동 능력을 키워 주는 친구 무리와 함께 했으니 말이다.



타자와 자신 모두의 코나투스를 증가시켜라!

이 말은 스피노자 윤리학의 중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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