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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n 27. 2024

칸트

철학 공부 끄적임

서양 근대 철학의 큰 획을 그은 사람, 칸트


우리는 모두 칸트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 칸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로 마을의 인간 시계 역할을 한 칸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별히 비범한 능력을 보이지도 않은 딱, 일반 사람이었다. 박사학위도 31세에 땄는데, 그 시대 기준으로도 늦은 학위였다고 한다.


그런 그는 대학 시간 강사 생활로 생계를 꾸렸고, 강의 실력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까지 대학에 가서 그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대학생이 아니어도 칸트가 살던 시대, 그 지역 대학은 주민에게도 대학 강의를 오픈했나 보다.


칸트는 대기만성형 인간이 아니었을까? 책을 처음 쓴 게 51세 때인데 그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 800여 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단 오 개월 만에 써버렸다고 하니, 늦게 봇물이 터진 게 아닐까? 하지만 한 번 터진 사고와 글은 이제 담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연이어  칸트의 명저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써낸다.


칸트가 51세에 첫 책을 출간한 것이 꽤 늦게 느껴지는데, 칸트가 그랬던 이유는 바로 흄 때문이었다. 칸트에게 흄의 철학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긴 사유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장장 11년 동안 말이다.  


흄(1711-1776)은 회의주의적 인식론을 펼친 철학자이다. 흄은 인간 지성을 분석하여 이성과 경험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이성적 지식은 경험을 토대로 추상화 과정을 거쳐 이끌어 내는 것인데, 그 경험 자체의 정확성을 흄은 신뢰하지 않았다.


어떤 경험 둘이 있다. 이를 하나는 원인, 다른 하나를 결과라 우리는 생각한다고 치자. 하지만 흄은 의문을 제기한다. 두 경험을 우리가 관찰하긴 할지라도 그 둘 사이의 원인-결과 인과 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가? 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즉 경험 간 결합의 실제성을 알 수 없다고 흄은 본 것이다.


흄의 회의론으로 자신이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되었다고 칸트는 말다. 흄의 회의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기 나름의 철학 사상을 정립하느라 긴 시간을 보낸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쓰고 세상에 얼굴을 늦게 내민 칸트는 흄의 회의론을 극복하고 과학의 확실성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흄의 회의론 이후 칸트는 자기만의 작업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했다.

첫째, 경험의 확실성을 세우는 작업

둘째, 신학을 보호하는 작업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세계를 과학의 세계와 과학이 밝힐 수 없는 세계로 나누었다. 과학의 세계에서 칸트는 흄의 경험에 대한 회의론을 반박한다.


흄이 경험의 확실성을 바깥 대상에서 찾아 회의론에 빠졌다고 보고 칸트는 이를 논박한다. 인간은 지성의 구조를 통해 경험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데 이 지성의 구조는 이미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라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이 확실한 지성의 구조에서 경험이 비롯되었다면, 그 경험은 확실하다는 것이 칸트의 결론이다.


칸트는 신, 종교, 도덕, 자유는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영역이라 보았다. 과학이 밝힐 수 없는 세계에 있기에 신에 대해서나 도덕에 대해서나 왜 그런지 과학적으로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이 영역에 대해서 왜냐고 따지지 마!' 이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다.


칸트가 과학적 원리로 이유를 묻고 따지고 할 영역이 아니라고 했던 도덕. 도덕에 대한 칸트의 사상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칸트는 행복주의, 쾌락주의, 경험주의를 비판한다. 이들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으로 보고 도덕을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칸트는 도덕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다른 어떤 것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선의지를 강조한다. 선의지는 오직 어떤 행위가 옳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위를 실천하려는 의지이다. 오직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하려는 의지 말이다. 칸트는 자율적 존재인 인간은 내면에 선의지를 가진다고 보았다.


칸트에게 행위의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행위의 결과일까, 행위의 동기일까? 도덕적 행위를 판단할 때 칸트는 행위의 동기를 중시한다. 바로 의지 말이다. 선의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고 바른 행동으로 여겨져도, 칸트 기준에서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선의지가 아닌 동정심에 의한 행위, 이것도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또한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경향성에 의해서 한 행위도 칸트 기준에서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선의지는 감각적 욕망을 따르는 악한 의지에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도덕 법칙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 도덕 법칙은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율성에 의해 의무 지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자율성에 의해 의무 지어진' 자율적 법칙이다.


자연법칙을 따르는 인간은 쾌락과 고통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이 자연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도덕 법칙이라는 것도 따른다. 이때 인간은 쾌락과 고통의 경향성이 아닌, 내면의 선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의무의 형태를 지닌다.  도덕 법칙은 '~ 해야만 한다' 식의 당위의 형태이다. 경향성과 선의지 모두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경향성의 유혹이 있더라도 선의지에 따라 도덕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 칸트는 보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묻고 따질 이유 자체가 없다. 그것이 도덕 법칙이기에 그냥 해야 한다는 것이 칸트가 말한 도덕 법칙이다.


도덕적 행위의 원칙이 도덕 법칙이다. 이는 이성적 존재가 따라야 할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실천 법칙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다 지켜야 하는 예외 없는 법칙이 이 도덕 법칙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 안의 실천 이성이 자율적으로 수립한 법칙으로 정언 명령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정언 명령은 무조건적 명령이다. '만약 성공하려면, 정직해라'라는 말은 정언 명령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건을 단 명령이기 때문인데, 칸트는 이런 명령을 '가언 명령'이라 했다.


이에 반해 정언 명령은, 조건이 없다. 행위의 결과에 상관없이 행위 그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도덕적 명령. 그것이 정언 명령이다.


정언 명령은 다음 내용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준은 바로 '보편화 가능성'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 내용을 적용하여 보편화가 가능하다면, 그 준칙은 도덕 법칙이다.


길에 넘어진 노인을 보고 도와야 한다는 준칙을 세웠다면, 이것이 보편적 입법으로 인정될 수 있나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보편화가 되는 준칙이다. 고로 이것은 도덕 법칙이다.


하지만, 배고플 때 옆 사람 지갑을 훔쳐서 뭔가를 사 먹어도 된다는 준칙은 보편적 입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고로 이것은 도덕 법칙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정언 명령을 가려낼 수 있다. 칸트가 말한 도덕 법칙의 또 하나 중요 내용은 '인격주의'이다.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만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


보편주의와 인격주의는 정언 명령을 구분하는 핵심 요소이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행동이란?

선의지의 지배를 받는 행위이다.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이고 의무의식이 동기가 된 행위이다. 실천 이성의 명령에 따른 행위도 도덕적 행동이고, 도덕 법칙에 대한 자발적 존중에서 비롯된 행위도 도덕적 행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언 명령에 따르는 행위가 바로 도덕적 행위이다.


칸트는 도덕과 행복이 양립은 가능하나 행복이 도덕의 목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도덕적 행위를 위해서는 행복을 염두에 두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칸트의 생각에 도덕적 행위는 다른 것의 수단으로 쓰일 수 없다.


칸트는 81세에 죽었다. 친구도 많았고 고장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아서 아주 행복한 인생 말로를 보내고 갔다고 한다. 칸트의 고향은 동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인데, 칸트는 이 도시에서 거의 평생 벗어나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의 사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후대에까지 이렇게 전해 지고 있다.


학문은 시끄럽다고 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조용하되, 내공이 있으면 울림이 좌우로 크게 퍼져 나가는 것 같다.


칸트의 내공은 매우 큰 것 같다.


칸트(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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