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렌시아 Jul 04. 2024

종이접기 낭만

학교 현장 에세이

지필평가가 어제 끝났다. 오늘은 성적 확인을 하는 날.


1교시, D반 국어 점수가 나온 학생들 점수표를 들고 교실에 들어갔다. 점수가 낮게 나왔어도 학생들은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저번 지필평가보다 학년 국어 평균이 10점이 낮게 나왔다고 하니 또 한 번 미소 짓는다. 그래, 그래, 어려웠지? 끝났으니 즐겁게 웃자. 나도 웃는다. 내일부터는 고전시가 진도를 나가기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점수를 확인한 후 오늘은 자유 시간.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과 종이접기를 하는 무리가 교탁 바로 앞에 있었다. 여학생 다섯 명이 학을 접고 있었다. 여고 시절 학 전문가였던 난 학생들에게 가서 한 장 받아 학을 접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묻기도 전에 애들이 얘기를 한다.

한 학생이 지연 샘을 좋아하는데, 학 만 마리를 접어서 드릴 거라고? 

만 마리? 천 마리도 아니고 만 마리?

네!


천 마리도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여고 시절 학 천 마리 접어 봤던 난, 이 학생의 만 마리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아, 만 마리 정말 힘들어. 그래서 친구들이 도와주는 거야?

네! ^^


옆에 다른 학생은 자기는 개구리를 접는다고 말한다. 자기가 접은 개구리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저 개구리는 못생겼다고 놀린다.

이 친구는 지지 않고 자기 개구리를 변호한다. 아직 뭘 덜 만들어서 그렇다고. 저 개구리 생각보다 잘 뛴다고. 개구리 집도 있다고. 집 안에 담긴 개구리를 보니, 한 여섯 마리? 자기 개구리 변호를 하는 이 학생도 왜 이리 귀여울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노란색 그 개구리 꽁지를 눌러보니, 

슝~~~~

오~~~ 점프력 좋다.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모여서 가내수공업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들.

자기는 지연 샘 파라고~~~ 샘 선물로 학 만 마리 드리고 싶다고.

또 어떤 애는 질세라 자기는 체육 샘 파라고~~~ 

또 어떤 애는 자기는 담임 샘 파라고~~~

또 어떤 애는 자기는 국어 샘 파라고~~~


그랬더니, 아까 학 주인 지연 샘 파인 학생이 국어 샘 파라고 한 학생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너 국어 샘 성함 알아?"

"응 잠깐잠깐 나 알아."

"(웃고 놀리는 말투로) 난 안다. 0, 0자, 0자 선생님이시다."


호호호 서로 구박하고 놀리고 장난치고 수다 떠는 이 예쁜 학생들.

좋아하는 선생님 많아서 좋겠다. 어쩜 이리 선생님 좋다고 학을 접고 개구리를 접고 하니... 요즘 세상에.


내가 이 말을 하니, 웃는 표정으로 한 학생이 얘기한다.

"그래서 학교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재미있어요."


아.....

아.... 그렇구나. 니들, 행복하다. 다행이다.


이 학생들에겐 학교 선생님이 미운 대상이 아니다. 하다 못해 교생 선생님까지도 좋아한다. 아직도 연락을 한다고 말해 준다. 그래. 교과 선생님도 다 좋다고 말하고, 하다 못해 담임 선생님까지도 좋다고 말하는 D반 아이들. 


그래, 그래. 


사실 나 학교 다닐 때는 이상한 선생님들이 꽤 계셨는데... 지금은 정말 그런 이상한 선생님들은 없는 것 같다. 내 학창시절 그 선생님들도 사실 지금 나의 기억으로는 옛날 향수가 묻어 나는 추억의 대상이긴 한데... 요즘 기준에서는 난리 날 선생님들이지만 말이다. 


나 학생 때는,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너희는 여자 선생님을 좋아하네.

그랬더니, 남자 선생님들이 다 결혼했단다.

ㅎㅎㅎㅎ

우리 때도 총각 선생님 좋아하긴 했지만, 결혼한 남 선생님도 멋있으면 막 좋아했어.

그렇게 얘기해 주었는데, 

뭐, 여자 선생님들이 너무 좋은 거겠지. 


"지연 샘이 만 마리 받고 좋아하실까요?"

"만 마리, 그거 엄청 많아. 담을 통도 엄청나게 필요할 거야."

"그렇겠지요?"


학 주인이 판단하겠지. 웃는 얼굴로 그 학생은 학 접는 진행 상황을 나한테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내가 보고를 들을 사람은 아니나, 재미로 학생이나 나나 서로 학 얘기하며 친분을 맺는다. 


한 달 전에 교탁 위에 학 7-8마리가 올려져 있었는데, 바로 이 학생의 학이었단다. 시험 기간 2주 동안 못 접었다가 이제 접는단다. 


"그런데, 그 지연 샘이 뭐가 그렇게 좋니? 진짜 궁금해서."

"그냥 다 좋아요. 첫 오티 시간에 그냥 뿅! 너무 좋아요."


아하. 그렇구나.

참, 재미있는 대화 시간이었다.


오늘 1교시 수업 풍경.


중간에 학생들이 자기가 접은 학과 개구리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ㅋㅋ 보라색 좋아한다고 했더니 다 보라색으로 주네. 이쁘니들.



매거진의 이전글 기말고사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