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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l 09. 2024

친절한 남학생

학교 현장 에세이

우리 학교가 3일간 학교 자율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학교 전체, 모든 교사와 학생이 프로그램을 구상하여, 일반 교과 수업이 아닌, 특별 수업을 3일간 하는 거다. 


공감, 연대, 소통


난 이 세 영역의 내용으로 수업을 구성하여 9시간 수업을 한다. 이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을 3일간 데리고 총 9시간을 하는 수업인데, 오늘은 첫날이라 3시간 수업을 했다.


먼저, 샘플 동화책을 내가 구연동화로 읽어 주었다. 학생들이 속한 모둠엔 동화책 삽화에 대사 부분만 말풍선으로 되어 있는 인쇄물을 나누어 주었다. 공감, 연대, 소통의 주제로 모둠 구성원들이 의논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 1시간은 구상, 다음 1시간은 구상 구체화와 작성, 마지막 1시간은 제출.


정원 35명 교실에 모둠이 10개나 됐었기 때문에 종이에 쓴 것을 교사 PC에 제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모둠은 교사 태블릿에 쓰고 있고, 또 다른 모둠은 노트북에 나와서 입력하고, 또 다른 모둠은 핸드폰에서 피피티 작업을 해서 내고... 동화책의 대사 부분이 말풍선 되어 있는 것을 일일이 학생들이 스토리를 작성해서 넣는 것이다. 그것을 태블릿에 써서든, 노트북에 타이핑 쳐서든 제출하는 것이라 교실 앞 쪽, 교사의 전자 기기가 있는 주변이 매우 바빴다. 자, 분위기는 대강 이러했고, 


오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어떤 남학생 이야기이다. 


이 남학생이 자기네 모둠 완성본을 교사 노트북에 입력하려고 앞으로 나왔다. 남학생이 교사 노트북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모둠 학생 메일로 작업 파일을 내가 보내야 했다. 고로 내가 노트북에서 공직자 메일로 들어가 파일을 보내는 동안, 이 학생의 작업이 끊겼다. 그 팀에게 메일을 보내고, 이제 다시 이 학생이 교사 노트북에서 작업을 하는데, 이번엔 다른 모둠 학생이 나와서 자기네도 파일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또 중지. 그 모둠 메일 작업 일도 끝나고 다시 이 남학생이 자기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또 얼마 안 되어서 다른 모둠 학생이 나와서 교사에게 자기네 파일 보낸 게 도착했나 확인해야 한다고 하고.... 등등등....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연출되었다.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노트북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자기네 모둠 결과물을 제출하려 노트북 앞에 앉았던 이 남학생은, 교사 노트북에서 메일을 확인하거나 보내거나 할 일이 있는 다른 학생들이 노트북 쪽으로 계속 나오는 바람에 일을 여러 번 멈춰야 했다. 


조금 할 만하면 끊기고, 조금 할 만하면 끊기고, 진짜 이제 좀 빨리 하자 할 만하면 또 끊기고...


옆에서 내가 보기에도 이 남학생, 분명 짜증이 나거나 싫을 만도 한데...  싶었는데. 

 

오~~~~ 대단하다. 이 남학생. 정말, 표정에서 짜증의 짜 자가 하나도 없는 거다. 정말 평온한 표정. 화도 안 내고 짜증도 안 내고.


다른 학생들이 노트북에서 볼 일 보고 들어가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일을 하는 그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대견하네. 감탄! 


저절로 칭찬의 말이 나왔다.


"어머, 얘야. 너 어쩜 짜증도 한 번 안 내니? 일이 계속 끊기는데. 우와.... 너 멋지다."


잘생긴 그 학생, 씨익 웃는데, 아이구. 웃는 것도 멋지네. 참 유순하다. 참 착하다. 


그 칭찬이 있은 뒤, 이제 다른 모둠이 보낸 파일을 교사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 주는 일, 이 일도 이젠 그 학생이 한다. 아주 스마트한 남학생이다. 융통성도 있고, 성품도 온화하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이 학생 엄마가 보면 기분이 참 좋겠구나. 칭찬이다. 칭찬! 진짜. 


내일은 10개 모둠이 만든 동화책, 구연동화를 듣는 날이다. 각 팀에서 나와서 얼마나 실감 나게 읽어 주려나? 연대, 공감, 실천의 주제를 어떻게 녹여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기대된다.




아들들이 이렇게 온화한 표정을 짓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했음 좋겠다. 

친절한 것은 좋은 것이다. 아들들, 좀 친절하자. 

아들들!!!  집에서, 말도 너무 없고, 대답도 너무 짧고, 얼굴도 무표정에, 친절하지도 않은 너희들. 


친절한 게 멋진 거야.  


내일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라고 식탁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고2 나의 아들에게 이 남학생 얘기를 들려 준 뒤, 슬쩍 얘기한다.  


"지민아, 친절한 게 좋은 거야~~" 

"알았어"


짧게 대답하고는 지 방으로 들어간다. '응' 이 아니라 '알았어',  3글자다. 1글자보다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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