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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Jul 12. 2024

인생무상

수정 없는 의식의 흐름

인생무상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헛되고 헛되도다. 30년 후 50년 후. 70년 후엔 분명 내가 죽어 있을 거다. 70년 후면 도대체 몇 살인 걸까? 120살이 넘네. 그때는 의학이 발달해서 혹시 살아 있으려나. 무섭다. 어제 아빠가 꿈에 나왔다. 남편이 검정 양복을 입고 사람들 주변에 서 있어서 알았다. 우리 가족과 관련된 그 누군가가 누워 있나 하고. 우리 아빠란다. 아빠. 아빠 돌아가신 지 7년째인데 우리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은 상태로 나온다. 아빠가 그 대신 부패가 진행되는 상태 같다. 그런데도 날 보고 반가워하시는 느낌이다. 그런데 난 가서 아빠 얼굴에 뽀뽀를 하고 얼굴을 부빈다. 아빠, 사랑하는 우리 아빠. 이렇게 말도 한다. 참 착한 딸이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그래. 아빠. 사랑해. 아빠가 문드러졌어도 난 아빠를 사랑해. 꿈속 내가 그렇게 아빠를 대해서 좋다. 아빠가 잘났건 못났건 난 우리 아빠를 사랑한다. 아빠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옛날 사람이긴 했지만, 아빠의 따뜻함이 유산이다. 내 안에는 아빠의 따뜻함이 유전자로 있다. 직장에서 오늘 어떤 남학생이 종 치고 수업 들어간 나에게 나와서 마이쮸 봉투를 벌려서 들이민다. 고르라는 말인데, 얘가 왜 나에게 지 간식을 주지? 따뜻한 남자애다. 내가 좋은가? 나에게 다가와서 먹을 것을 준다. 나눠 먹는 그 마음. 고맙다. 인생무상인데. 내가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고 태권도를 잘하고 여행을 다니고 독서 모임을 나가고 자식 때문에 아등바등하고 돈을 모으고 매일 앉아서 눈 감고 있어도 다 인생무상이다. 난 죽는다. 내 주변 사람도 다 죽는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건 사르트르한테는 말하면 안 되는 건가? 인간은 그냥 내던져진 존재라고? 왜 태어났는지 물으면 안 된다고? 그래. 열심히 살다가 쫑하고 죽는 거다. 인생무상이 죽음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어떤 아들이 물속에서 빠지기 직전의 어머니를 구조했다는 기사를 봤다. 10분만 늦었어도 어머니는 물속에 잠겼을 거란다. 어머니는 자식보고 오지 말라고 했단다. 너 죽는다고. 아들은 엄마 말 안 듣고 엄마를 구하러 간다. 그래. 애기도 아니고 다 큰 아들인데 엄마를 내 눈앞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 순간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고 엄마를 구하는 선택. 그래. 그건 무상하지 않다. 인생은 무상할지라도 인간의 선택은 무상하지 않고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거다. 나는 가더라도 남겨진 사람에겐 내 선택, 내 행적, 내 말과 기록이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난 간다. 난 몇 살에 죽을까? 할머니가 되면 몸이 아프다. 정신도 아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정신까지 아팠다. 치매는 무섭다. 치매 걸린 삶은 인생이 무상할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니 무상하지 않다. 그럼 나의 삶은 무상하지 않은 건가. 그치. 그렇게 보면 내 삶은 인생무상이 아니지. 사랑하는 사람은 있다. 그래도 난 가끔 인무상을 느끼곤 한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건데 난 가끔 인생무상을 느낀다. 너무 연연할 것 없다. 너무 매달릴 것 없다. 후회 없이 할 것 하면서 내 역할을 하며 사는 거다. 인생은. 나만 편하게 지원하는 삶은 안 예쁘다. 쓸모 있는 인간이고 싶다. 남이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의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고 싶다. 내 일이 무상하지 않은 건가? 그래도 일상에선 자신 없을 때가 있다. 뭘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주눅 들 때가 있다. 이런 모습, 난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요 며칠 내 마음 상태를 잘 보면 난 이렇다. 주눅 들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 주눅 든 나를 바라본다. 난 항상 당당하지는 않다. 항상 당당한 사람은 멋진 걸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감정의 리듬이 있는 게 보통 사람이다. 너무 잘나고 당당한 사람은 인간답지가 않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힘들다. 주변 사람이. 빈틈이 너무 많은 사람도 주변 사람이 힘들다. 중용이 좋은 건가. 중용도 적당히 필요하다. 맨날 중용인 건 답답할 수도 있다. 어쩔 땐 그게 우유부단일 수도 있다. 회색주의일 수도 있다. 중용과 우유부단과 회색주의는 같은 선상에 있다. 근데 맛과 색깔의 차가 있다. 중용은 좋지. 괜찮고. 우유부단은 답답하다. 회색주의는 시니컬해서 별로다. 그런 사람은 피곤하다. 혼자 사시는 교감 선생님. 혼자 사는 내 친구. 아. 강아지랑 살지. 부모님 하고 같이 살지만 싱글인 내 친구. 이들은 외로울까? 인생무상을 느낄 때가 있을까? 뭔가를 열심히 하다가 문득 '이걸 뭘 이렇게 열심히 하지? 인생무상인데'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 썼던 기록들. 생각보다 잘 안 본다. 근데 그 순간의 내가 기록하고 싶어서 기록한 거다. 가끔 아주 가끔은 정말 가끔은 꺼내서 읽어 보는 일이 있긴 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안 본다. 결혼할 때 앨범 많이 만든 것. 그것도 안 보고 창고에 있다. 우리 아이들 사진도 안 보고 창고에 있다. 나 죽을 때 집에 있는 책들은 다 짐이다. 그전에 다 정리를 해야지. 자식한테 유산으로 줄 게 아니야. 내 책은 내 자식에게 짐이 될 거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아들은 책 엄마가 미리 정리하란다. 그것 자기는 못 치울 것 같단다. 그니까 결론은 엄마가 버리고 죽으라는 얘기다. 나름 이해된다. 지 성격대로. 딸은 안 된단다. 엄마 책 버리지 말란다. 자기가 본다나? 잘 기억이 안 나네. 어찌 됐든 아들과 대답이 달랐다. 그래도 난 그전에 책을 정리할 거다. 이남희 작가님이 책을 다 정리하고 아주 조금만 뒀다는 것이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책을 왜 버리지 싶어서. 이젠 이해된다. 책도 짐이다. 12시다. 요즘은 밤까지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직장 퇴근 후엔 내가 할 일이 많다. 직장에서도 할 일이 많다. 퇴근 후에도 챙길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게 뒤로 밀린다. 그래도 자기 전엔 끄적인다. 타이핑 친다. 자기만의 문체. 자기만의 색깔. 작가만의 개성. 있는데 일단 그게 뭔지는 그 작가도 처음엔 모른다. 일단 썼을 거다. 그러다 지향점이 생겼을 거다. 그 지향점대로 하다 보면 자기만의 문체가 생기는 걸 거다. 나도 쓴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쓴다. 인생은 무상하나 난 이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인간이 던져진 존재이니 그냥 사는 게 맞다. 무상함을 느낄 때는 그 무상함을 오롯이 느낄란다. 죄책감을 갖거나 거부하거나 하지 않겠다. 도덕적으로 피곤하게 날 가르치지 않을 거다. 인생이 무상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난 삶을 잘 살아낼 거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감사하다. 내가 모든 사람과 관계가 좋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내가 모든 일을 척척 해결하고, 내가 모든 일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고 하는 게 아니지만, 난 나대로 산다. 내 모습 그대로 내 삶을 산다. 남들과 다른 나는 있지만 그게 나다. 남들과 다르니까 나지 내가 남들과 같으면 나겠어? 그치. 맞는 말이다. 오늘 태권도도 직업의식을 숭고히 느끼게 해 주었다. 나보다 젊은 관장님이 사랑니를 빼고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도 몸으로 시범 다 보이고 계속 말하며 사람들 지도하는 것 봐봐. 삶이 쉽지는 않다. 힘들고. 그럼에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관장님의 직업의식,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무상이라고? 아니. 의미 있지. 그 사람이 남긴 행동, 말이 남는다. 그 행동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분명 그런 건 있다. 그 사람이 죽더라도 없어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그 영향력은 영향을 계속 끼친다. 믿거나 말거나라고? 그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무상 반티가 우리 집엔 두 개나 있다. 추억이다. 그때 아이들이 날 업어 주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업힐 수 있었다. 지금은 업힐 수 없다. 그 애나 나나 서로를 위해 우린 업거나 업히거나 하면 안 된다. 업은 애 허리 다칠라. 난 무지 창피할라. 그니까 업히는 일 없어야 한다. 옛날 얘기이다. 그때 그 영훈이. 멋진 화가? 웹툰 작가 일을 하고 있을까? 벌써 30대 후반일 것 같은 그 아이, 날 업었던 아이. 인생무상 반티를 입었던 2008년 그해. 사람의 기억은 감정과 함께 남는다. 완벽한 기억으로는 아니더라도 어렴풋한 느낌으로라도 남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은 있는 게 사실인데, 분명 변하는 것도 있다. 나도 변했다. 나도 변했어.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이게 세상의 이치이다. 온 우주의 이치이다. 안 변하는 건 없다. 인생무상, 느끼더라도 잠은 자야지. 굿나잇, 인생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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