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뚜껑, 투명 플라스틱 통. 뭐 먹은 통일까? 땅콩? 해바라기 씨? 크지 않은 통이다. 그래도 김치를 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통이다. 내 눈에 보이는 저 통은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가? 누가 올려 놓았을까? 그 옆 초록색 뚜껑의 플라스틱 통, 저건 또 언제부터 있었을까? 둘이 옆에 있지만, 초록색 통은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쟤는 사각형 통이다. 빨간 뚜껑 통은 몸통은 사각, 뚜껑 쪽은 원형인 모양의 통이다. 초록 뚜껑 사각형 통은 기울어지지 않고 잘 올려져 있다. 저 빨간 통은, 약간 귀엽기도 한데, 얘는 몸이 기울어져 있다. 둘 중 뭐가 좋냐 하면 난 저 빨간 통이 좋다. 좀 귀엽다. 플라스틱 통을 보고 귀엽다고 하다니. 내 인생에 언제 이 통이 비집고 들어올 줄 알았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쟤는 내 인생에 들어온 거다. 어제까지도, 오늘 밤까지도,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쟤는 나와 상관이 없던 애다. 그냥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하던 애이다. 그런데, 난 지금 저 빨간 뚜껑이 귀엽다느니 마음에 든다느니 얘기를 하고 있으니 웃기다. 비집고 들어온다. 삶의 많은 순간들이 푹푹 비집고 들어온다. 예측할 수 없다. 냉장고 위에 여러 짐이 올려져 있다. 냉장고 위에 물건을 올리는 건 안 좋은 일일 것 같다. 세탁기가 고장났다. 나, 진짜 고생 중이다. 2주간 빨래를 나르고 있다. 밖으로 날라서 빨래하고, 다시 그 빨래 집으로 가져와서 건조기 돌리고, 그 다음날이면 또 빨래감 산더미라 그 많은 빨래들을 들고 집 밖 세탁할 곳을 찾아서 세탁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또 꺼내서 집에 와 건조기 돌리고. 이걸 7-8번은 한 것 같다. 세탁기를 샀다. 통돌이로 샀다. 드럼, 이제 안 사고 통돌이. 드럼 계속 고장나. 엄마가 통돌이 예찬가이다. 엄마 말이 맞겠지 싶다. 엄마의 십 수 년 반복되는 말에 나도 세뇌가 되었나? 반복 학습은 효과가 있구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 말이 떠오른다.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배송 날짜가 언제일지를 몰라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샀으니 연락이 오겠지. 앞으로 5번 정도 빨래 나르기를 하면 될까나? 통돌이 최신 버젼이 궁금하네. 실물을 보고 싶다. 요즘은 다 인터넷 세상이다. 밖의 유명 상점을 가도 사람이 없다. 홈플러스도 사람이 적고 롯데마트도 사람이 적고. GS마트도 사람이 적고. 코스트코만 사람이 많네. 더 현대, 거기 백화점은 사람이 많던데. 세상 사람들이 그런 곳 갈 때만 나타나고, 보통 때는 다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는 걸까?세이브존을 가도 사람이 적다. 아쉽다. 북적북적대는 그 느낌이 좋아 그런 곳 가서 쇼핑하는 맛이 있었는데. 이젠 사람이 별로 없다. 이 동네 홈플러스 장사 못 하나? 사람이 없네.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동네 홈플러스 봐도 사람이 없네. 홈플러스 뿐만 아니라 롯데마트도 없고 세이브존도 없어. 사람이. 아기도 없다. 아기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 임산부 보기도 힘들다. 임산부도 진짜 찾아 보기 힘들다. 직장에서 아기 낳았다는 소식 듣기? 진짜 없어졌다. 거의, 아예 없다. 세상이 변했다. 다 진짜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고 한다. 강아지가 아기가 됐나 보다. 오늘 동료와 대화를 하는데 강아지 유치원에서 보내 주는 매일의 문자, 그 문자를 보여 준다. 동영상도 보여 준다. 점프 할 때 두 발바닥 보이는 사진이 찍혔는데, 그 사진을 보고 예뻐서 난리 난리이다. 진짜, 좋아하는 거지. 강아지가 식구이니까. 강아지 식구인 건 좋고 다 이해되는데, 아기를 볼 수 없는 게 쫌 안타깝다. 아기들, 귀여운 아기도. 이제 유모차에 아기가 있으면 신기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유모차에 강아지가 앉아 있으면 신기해서 다시 봤는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개모차는 대세, 사람 아기 타는 유모차는 희귀템. 아기 때는 참 다 예쁘지. 우리 아이들도 참 예뻤는데. 크면 왜 자기 동굴에 들어가는 걸까? 말도 툭툭 던지고. 상처를 받는다. 그 순간. 근데 엄마니까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다. 그래야 다시 웃으며 내 아이를 대할 수 있으니까. 내 상처에 내가 함몰되면 아이는 날 보기 싫어질 테니까. 아이들 마음을 내가 받아 줄 수 없으면, 아이가 내게 툭툭 내뱉는 말조차도 안 한다면. 참 마음이 썰렁할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치유한다. 내 치유 약은 시간이다. 그 순간 화 안 내기랑. 말이 쎄면 관계가 불편해진다. 쎈 말은 하지 않는다. 억양도 표정도 되도록.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상대방은 또 다를 거다. 빨간통, 작은 빨간 통 뚜껑. 다시 보인다. 저 위에 얹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플라스틱 재활용 통에 슝 버려질지 모르는 저 빨간 통. 밤이다. 시계 글씨가 빨간색이다. 내 차는 빨간색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검은 색 흰 색 차만 탄다. 인도네시아 친구가 진짜 신기해 했다. 한국 자동차 색깔 다 비슷, 똑같은 것, 진짜 너무 신기하대.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건물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아래 차들의 색깔을 쳐다본다. 그러면 진짜 웃기다. 그 많은 차가 다 한 빛이다. 참 신기하다. 우산도 그렇다. 그저께 우산 쓰고 가는 젊은 사람들을 봤는데 다 검정색 무지 우산이다. 우리 아들도 우산을 사면 다이소 가서 검정 우산을 산다. 세련된 미적 감각이 있어서 다들 그렇게 검정, 하양, 회색을 고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무난한 게 좋아서, 질리지 않아서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많은 사람이 다 비슷한 심리로 그 색들을 고르고 산다는 것,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민성이라는 건 분명 있는 것 같다. 오늘 주인공은 빨강 통이다. 얘야, 네 덕에 이만큼 애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이제 난 잘 거다. 빨간 통, 다음에 널 다시 볼 것 같아. 오늘 내 눈에 한 번 들어왔기 때문에 말이다. 너도 잘 자라. 빠이. 이 나열된 글씨 모양을 보니, 알사탕 동화책이 떠오른다. 아빠가 아들에게 잔소리 해 대는 장면, 가슴 찡하게 감동이 느껴지는 장면. 거기 그 나열된 글씨 느낌이 난다. 잔소리는 사랑인데, 그치. 무관심하면 말할 것도 없지. 자, 그만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