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공부 끄적임
삶의 무리가 열에 셋이 있고 죽음의 무리가 열에 셋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곳으로 움직이는 자 역시 열에 셋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살고 살려는 것이 후하기 때문이다.
듣건대 섭생을 잘하는 자는 육지에서 행하더라도 외뿔소와 호랑이를 마주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갑옷이나 병기를 착용하지 않는다.
외뿔소는 그 뿔을 들이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는 그 발톱을 둘 곳이 없으며, 병기는 그 칼날을 허용하는 곳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그는 죽음의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50장)
<공부 메모>
노자는 후생(厚生)을 좋은 의미로 풀지 않았다.
'더 잘 살고자 애쓰는 것, 그것은 네 명을 재촉하는 일이다.'라는 말한다.
섭생(攝生)은 좋은 의미로 말한다.
섭생은 생명을 중시하는 것이다. 섭생하는 자는 짐승과도 평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자이고, 사람 가운데에서도 풍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