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대학로에 우리 반 아이들과 연극을 보러 갔다. 아이들 중 어떤 아이는 생애 첫 연극이라며 아주 들떠 있었다. 아이들과 소극장을 나와 지하철 쪽으로 가는데, 그 앞에 분식 포장마차가 있었다. 배도 좀 고플 것 같고, 선생님이랑 대학로까지 왔는데, 뭘 사주고 싶어서 애들에게 포장마차에 들어가자고 했다.
아이들과 가긴 했는데... 아이들이 포장마차를 빙 둘러싸고 서니, 어느 팀에게 어떻게 음식을 시켜 주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주머니가
"뭐 드려요?"
"아... 네.... 아, 그러니까.... 떡볶이를....음...튀김이랑....음.....음......"
"잠시만요, 애들이 여러 명이라 잠시만요.... 음.... 음...."
지금 쓰면서 보니, 지금은 잘 시킬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잘 못 시키고 있었다.
그때, 짜잔.
나의 흑기사.
우리 반 상준이.
상준이가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2만 원 치 사 주실 거예요?"
"응."
"아줌마, 2만 원 치 알아서 주세요."
상준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신다.
그러더니, 각자 팀 앞에 떡볶이와 튀김을 알아서 척척 놔주신다.
'떡볶이 몇 인분을, 몇 개 주시고, 튀김을... 이 튀김, 저 튀김, 요 튀김을 몇 개 해서 주시고... 오뎅을....'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속으로 입을 벌리고 상황을 구경하게 됐다.
'우와.... 상준이 멋지다. 그냥 한방에 처리해 버리네?'
'나처럼 다 정해서 알려 줄 필요가 없구나. 아줌마가 알아서 하실 걸... 큰 것만 말하면 되는구나.'
정말 감탄했다. 상준이의 문제해결력.
멋진 상준이.
상준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쎈 애였다. 소위 말하는 노는 애. 하지만, 나랑 상준이는 죽이 정말 잘 맞아서, 1년 내 참 친하게 됐지. 졸업식 때 상준이가 지가 가족들에게 받은 멋진 꽃다발 전부를 다 나에게 와서 주고 갔다. 귀찮아서 처리하러 온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날 보러 와서 선물로 주고 갔지. 그날 지가 가진 것 전부를 주고 간 애.
그 상준이. 우리 상준이.
오늘 상준이와 떡볶이 2만 원 얘기를 쓰는 건, 아마도... 어제 어느 작가님의 '치~~', '치~~~~ 치', '~~~~ 치'시리즈 글을 읽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다 관여하지 않아도, 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더 쉽게 해결한다. 간단한 아이들의 말로.
웃음 하나, 작은 배움 하나.
상대에게 권한을 줘라.
길게 말로 설명하지 마라.
그냥 쉽게, 쉽게, 놓아주어라.
나의 흑기사, 16살 상준이.
이제는 26살, 장가갈 나이이다.(좀 이른가? ^^)
가끔 그리워지는 제자이다.
( 참고: '치~~', '치~~~~ 치', '~~~~ 치' 글 : 김보영 작가님의 글 '영어 못해도 되는 호텔 조식 "계란 프라이"')